동굴 속의 절망

롯의 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by Shin란트로

성경에는 읽다가 책을 덮고 싶어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19장 30절 이후가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한 후, 롯과 그의 두 딸은 산속 동굴에 숨어 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그와 동침합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그 딸 둘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창세기 19:36)


스무 살 순진할 때도 아니고 서른둘, 아줌마가 되어서였지만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성경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왜 성경은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교회를 다니니 일주일에 한 번씩 셀모임이라는 걸 했습니다. 이민 생활이 외롭기도 했고, 한 끼라도 식사 준비를 덜 수 있어 꼬박꼬박 참석했었습니다.
"성경에 왜 이런 내용이 있나요?"

모임에서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리더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좋은 이야기만 모아놓은 책이 아니에요.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이죠."

그날 처음 깨달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승인하신 건 아니라는 것을.

다윗의 간음도, 아브라함의 거짓말도, 야곱의 속임수도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들을 "본받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지 마라"는 경고였습니다.


소돔에서 자란 아이들

롯의 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어디서 자랐는지 봐야 합니다.

소돔.

창세기 18장과 19장에 묘사된 소돔은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습니다.

천사들이 롯의 집에 왔을 때, 소돔 남자들이 몰려와 외칩니다.

"그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그들과 관계하겠다."

동성애를 말합니다.

롯은 필사적으로 말합니다.

"제발, 이런 악을 행하지 마세요."

그리고 놀랍게도 딸들을 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롯의 딸들은 그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요.

아버지가 자신들을 폭도들에게 내주려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무너지는 세상을 목격하다

다음날 아침, 도시 전체가 불과 유황으로 뒤덮입니다.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됩니다.

약혼자들은 경고를 비웃다가 함께 멸망합니다.

열여덟, 스물 정도 되었을 두 딸은 아버지와 함께 산으로 도망칩니다.

뒤를 돌아보면 연기만 피어오르는 평원이 보입니다. 살았던 집도, 친구들도, 익숙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동굴에 숨습니다.


동굴 속에서 키운 두려움

작은 동굴 속. 어둠. 침묵.

큰딸이 동생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에는 우리의 도리대로 우리와 동침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씨를 보존하자" (창세기 19:31-32)


"온 세상에 사람이 없다."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만 멸망한 게 아니라, 세상 전체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거죠.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나님이 다시 세상을 심판하신 거야. 우리만 살아남은 거야.'


왜곡된 생존 본능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진화심리학에 보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이상하게 작동해. 삶에서 생존과 번식이 최우선이 되고 윤리나 도덕은 뒤로 밀려나."

롯의 딸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류가 끝날 수는 없어. 우리가 씨를 이어가야 해.'

그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만 살려두신 게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살아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소돔의 그림자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사건에는 소돔의 영향이 배어 있습니다.

소돔은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경계가 무너진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십수 년을 살며 자란 딸들의 가치관은 어땠을까요.

아버지 롯 자신도 소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천사들을 보호하겠다며 딸들을 내주려 했던 것처럼요.

롯의 가족은 소돔에서 나왔지만, 소돔이 그들 안에서 나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록된 결과

큰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

작은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성경은 이후 이 두 족속을 어떻게 다룰까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 (신명기 23:3)


모압과 암몬은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의 적이 됩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그들의 시작은 절망이었고, 그들의 역사는 저주로 얼룩졌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한 대가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와 닮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라는 늙었고, 아이가 없었습니다.

사라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여종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은 지금까지도 갈등합니다.

롯의 딸들도 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거야'라고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뭔가 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동굴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그러나 여전히 동굴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는 외로움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평생 혼자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선택합니다.

어떤 이는 불안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지금 뭔가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거야'라는 조급함에, 윤리나 가치관을 타협합니다.

어떤 이는 절망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습니다. '이젠 끝장이야,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아'라는 생각에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롯의 딸들이 "온 세상에 사람이 없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착각합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동굴 밖에는 빛이 있었다

롯의 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산 아래로 내려갔다면,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른 길을 마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동굴 안에 머물렀습니다. 두려움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이 이 이야기를 남긴 이유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불편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이런 이야기마저 기록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것 봐. 절망 속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선택들을. 두려움이 얼마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지를."

그리고 속삭입니다.

"그러니까 기다려. 하나님을 신뢰해. 네가 보지 못하는 길이 있어."


소금 기둥이 된 어머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라."

하지만 그녀는 돌아봤습니다.

왜였을까요.

아마도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요.

집, 친구들, 익숙했던 삶.


딸들도 어머니처럼 뒤를 돌아봤습니다.

물리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소돔에서 배운 것들, 소돔의 가치관, 소돔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특히 그 과거가 우리를 형성했을 때는요.


동굴에서 나오기

재작년 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지인이 말했습니다.

"언니,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보여요."

롯의 딸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알았을 거예요. 세상이 전부 끝난 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동굴 안 어둠 속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모든 것을 덮었습니다.


다른 선택이 있었다

만약 큰딸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언니도 무서워. 근데 우리 좀 기다려보자.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살려주셨잖아. 분명 길이 있을 거야."

만약 그들이 동굴을 나와 도움을 구했다면.

만약 아브라함 삼촌을 찾아갔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은 역사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

롯의 딸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교훈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냥 슬픈 이야기입니다.

절망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두려움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게 하는지, 인간적인 방법이 어떻게 더 큰 비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이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너의 동굴에 갇혀 있지 마. 네가 보지 못하는 빛이 있어."


동굴 입구에 서서

가끔 저도 제 동굴에 갇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라고 생각할 때.

'지금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라고 조급해할 때.

그럴 때 롯의 딸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문합니다.


"정말 다른 길이 없을까?"

"내가 보지 못하는 가능성은 없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 될까?"


동굴 밖에는 빛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 한 스푼 더: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롯의 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피해자였으니까요. 소돔에서 자라며 상처받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렸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선택이 정당화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성경이 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옳다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았고, 모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우리의 선택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동굴을 나올 용기가 필요합니다.

빛을 향해 걸어갈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니까요.

동굴 밖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독자님의 삶에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난해한 성경을 헤매다, 뜻밖에 삶의 답을 찾기까지.

우리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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