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노예제를 지지했을까
미국 남부의 어느 농장주가 채찍을 들고 말합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종들아,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1850년대 미국 남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들은 설교단에서 에베소서 6장을 읽으며 흑인 노예들에게 순종을 설교했습니다.
그 노예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배에 실려왔고, 가족과 헤어졌고,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6:5)
이 구절은 수백만 명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 과제를 하다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노예제 폐지 운동가들과 노예주들이 서로 성경을 들고 싸웠다는 것을.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것을.
그때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에 아무 고민 없이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정치인들도 똑같은 법을 근거로 양쪽 진영이 대립하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법이나 규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고 보니 세상에 그런 종류의 사람들도 있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지만 내가 믿는 성경이 과연 그런 건지 아닌지는 알아봐야 했습니다.
성경을 펼쳤습니다.
에베소서 6장, 골로새서 3장, 디모데전서 6장... 종들에게 순종을 명령하는 구절들이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왜 바울은 노예제 폐지를 외치지 않았을까.
왜 "노예를 풀어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은 인구의 30~40%가 노예였습니다.
5명 중 2명이 노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노예제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미국의 흑인 노예제와 달랐습니다.
미국의 노예제는 인종에 기반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피부색 때문에 평생 노예였습니다. 자녀도 자동으로 노예가 되었습니다. 탈출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노예제는 달랐습니다.
전쟁 포로나 빚을 갚지 못한 사람, 가난 때문에 스스로를 판 사람,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노예가 되었습니다. 인종과는 무관했습니다. 백인도, 그리스인도, 로마인조차도 노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건, 노예의 지위가 생각보다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노예는 광산에서 혹사당했습니다. 반면 어떤 노예는 의사였습니다. 교사였습니다. 회계사였습니다.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 일하고 돈을 모아 자신을 사는 것, 혹은 주인이 은혜로 풀어주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것을 '마누미시오(manumissio)'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노예들이 로마 사회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인종과 무관하다면, 이유 있는 노예라면 괜찮은 걸까? 로마의 노예들 역시 법적으로 ‘소유물’이었고, 해방된 소수의 노예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광산과 농장 등에서 가혹하게 일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노예 해방을 외치지 않았을까?"
기원전 73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이 있었습니다. 로마는 어떻게 진압했을까요.
반란에 참여한 노예 6,000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 로마에서 카푸아(Capua)까지 가는 길 양옆에 세웠습니다.
그게 로마의 방식이었습니다.
1세기 당시 기독교는 소수 종교였습니다. 유대 지역의 작은 분파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만약 바울이 "노예들이여, 반란을 일으켜라!"라고 설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독교인들은 모두 체포되고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더 혁명적인 것을 말했습니다.
빌레몬서를 읽어봅니다. 바울이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에 관해 주인 빌레몬에게 쓴 짧은 편지입니다.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 후로는 종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게 하려 함이라" (빌레몬서 15-16)
종이 아니라 형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형제로 환대하라'는 부탁을 합니다. 직접적인 해방 명령은 아니지만, 사회 규범을 넘어선 관계를 요구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 전체를 뒤흔들 만한 말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좀 더 노골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교회 안에서 모두가 동등함을 말합니다. 종과 자유인이 같다고 말합니다.
주일 아침 교회에 모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주중에는 주인과 종이었던 사람들이, 예배 시간에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함께 찬송했습니다.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어쩌면 종이 주인에게 기도해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회 제도가 바로 해체된 것은 아니었지만, 영적으로는 평등함이 강조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사회의 모든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노예제에 시한폭탄을 심었다."
당장 폭발시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이 믿음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18세기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제 폐지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성경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19세기 미국 노예 해방 운동가들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20세기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성경을 설교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어쩌면 돈을 훔쳤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 법에 따르면, 도망친 노예가 잡히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채찍질, 낙인, 심지어 사형까지도 가능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고, 복음을 들었고,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빌레몬에게 다시 보내면서 편지를 씁니다.
"이제 그는 네 종이 아니라 형제입니다. 나를 영접하듯이 그를 영접하세요."
바울은 은근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요청합니다.
그를 자유롭게 해 주세요.
커피를 마시며 생각합니다.
이 커피를 만든 사람은 정당한 임금을 받았을까.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 혹시 어린아이가 하루 16시간 일하며 만든 건 아닐까.
우리는 노예제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현대판 노예제는 존재합니다.
UN국제노동기구(ILO)와 워크프리(Walk Free) 국제 인권재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약 5천만 명의 현대판 노예가 있다고 합니다. 매 30초마다 인신매매가 발생하고, 매년 200만 명의 아이들이 강제 노동과 성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5절에서 종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주인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에베소서 6:9)
주인들에게도 명령합니다.
위협하지 말라고. 하늘의 주인 앞에서는 너희도 종이라고.
바울은 양쪽에 말하고 있었습니다.
종에게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주인에게는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다고, 종을 사람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의 결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했는지, 자유를 주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학대했다면, 이 편지가 성경에 포함되었을까요?
이 편지가 보존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빌레몬이 바울의 권고를 따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오네시모는 자유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승에 따르면, 오네시모는 후에 에베소와 베레아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네시모가 노예에서 교회 지도자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주인 빌레몬이 바울의 권유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처음부터 '노예제는 잘못됐다'고 말했으면 안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변화는 한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씨앗이었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었다가, 천천히 싹을 틔었습니다.
수백 년이 걸렸지만, 결국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울이 심은 가장 위험한 단어는 이것이었습니다.
형제.
종이 아니라 형제.
소유물이 아니라 형제.
주인과 종이 함께 부르는 말. "우리 아버지."
그 한 단어가 로마 제국의 기초를 흔들었습니다.
그 한 단어가 노예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한 단어가 지금도 울립니다.
성경이 노예제를 지지했을까요?
성경은 1세기 로마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바꿀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했습니다. 당시 사회 제도 안에서 어떻게 신앙적으로 행동해야 할지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릴 씨앗을 심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다."
그 씨앗이 자라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때로는 너무 오래 걸렸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씨앗은 결국 자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현대판 노예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의 편안함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를 형제로 대하고 있는가?"
복음의 씨앗은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손으로, 계속 자라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독자님의 삶에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난해한 성경을 헤매다, 뜻밖에 삶의 답을 찾기까지.
우리 함께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