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이라는 단어를 마주한 날

온순한 아내의 내적 여정

by Shin란트로

결혼 5년 차, 두 아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부부 세미나가 열렸고, 강사는 에베소서 5장을 펼쳤습니다.

남편에게는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는 말씀이 각각 주어졌습니다.


강사는 말했습니다.

“사실, 남편의 사랑 명령이 더 무거운 거예요. 그리스도처럼 사랑하라는 거니까요.”

그 말도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제 귀에는 한 단어만 크게 울렸습니다.

복종.

인절미가 목에 걸린 것처럼, 그 단어가 가슴 한가운데 탁 걸렸습니다.


북경에서 시작된 인연

남편을 처음 만난 건 북경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전력 북경사무소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었고,
남편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대학원을 중국에서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낯선 도시에서, 남편을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첫 보금자리는 코리아타운에서 시작했습니다.
아파트를 구하고, 물건 살 만한 곳을 찾아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된 이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일에 교회를 가는 건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교회는 단순한 한인 커뮤니티 그 이상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사랑받는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교회는 가족 같은 공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온순했던 어린 시절

저는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아이”였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거역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께도, 어른들께도 늘 순종적이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저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기도했고, 봉사했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했습니다.

저는 제가 말씀대로 잘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복종, 불편함의 정체

그런데 그날, 부부 세미나에서 “복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뭔가 불편했습니다.

순종과 복종은 다른 걸까?
왜 남편에게는 “사랑하라”이고, 아내에게는 “복종하라”일까?


'복종이랑 순종이랑 뭐가 다른 거지?'

비슷한 듯하지만, 분명 뭔가 다르니까 다르게 부를 텐데...

제 안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말로만 따르던 순종

저는 스스로를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얼굴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니,
그 순종은 상당 부분 내 기준에 맞는 한도 안에서의 순종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네’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판단하고, 비교하고, 평가했습니다.

부모님께, 교회에, 하나님께, 특히 남편에게요.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남편은 왜 그만큼 안 하지?’

남편이 저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나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제 속에서는 이런 말이 올라왔습니다.

‘성경에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못해?'

말씀에 순종한다면서,
사실은 그 말씀을 무기처럼 들고 남편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교만한 태도였는지,
인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을 인정하지 못한 채

남편도, 저도, 둘 다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완벽하게 사랑할 수 없고, 때로는 지치고, 짜증도 내고,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잘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왜 못하지?’
‘나는 순종하려고 애쓰는데, 왜 남편은 사랑하지 못하지?’

저는 완벽한 순종을 해내지 못하면서,
상대의 불완전함에 대해선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21절을 다시 보다

결국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에베소서 5장을 22절부터가 아니라, 21절부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보였습니다. 아내의 복종은 남편의 권위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피차 복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내가 스스로 질서 안에 들어가는 "자발적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종은, 아내만 남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져야 하는 태도였습니다.


복종의 진짜 의미를 찾고 싶어서

며칠 동안 저는 사전을 찾아보고, 여러 글과 주석들을 읽어보았습니다.

‘휘포타쏘(Hupotasso: ὑποτάσσω :복종).’

원래는 군대 용어로 “질서를 따라 어떤 대열 아래에 놓다”라는 의미이고, 가정에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었습니다.

기꺼이 어떤 질서 아래 서는 것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세워 주는 것

관계 안에서 서로의 유익을 먼저 두는 태도

일방적인 굴복이나 인격의 말살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과 섬김에 가까운 그림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

그걸 깨달은 날 이후, 뭔가 달라지긴 했습니다.

완벽하게 변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서로의 불완전함을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대신, 감사한 부분을 보려 했습니다.


제가 변하니, 남편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요청하면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먼저 나섭니다.

"저녁 준비 같이 하자."

"쓰레기 내가 버릴게."

그리고 가끔은 개구쟁이처럼 물어봅니다.

"이렇게 해주면 좋아?"

그럴 때마다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 이게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거구나.'

남편도 불완전하고,
저도 불완전합니다.

둘 다 배우는 중이고,
둘 다 그 길 위에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다투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다툽니다.


대학생이 된 자녀에게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야 할지.
직장인이 된 자녀가 집에 함께 살면서도
어떻게 독립적인 어른으로 자라도록 도와줄지.
양가 부모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 갈지.


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의견이 부딪힙니다.
가끔은 목소리도 높아집니다.

그럴 때 남편이 말합니다.

"우리 잠깐 멈추고 기도한 후 다시 얘기하자."

완벽한 해답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추수감사절 가족 여행에서

얼마 전 추수감사절에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으로 가족 여행을 갔습니다.

밤, 사막의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빛났습니다.

별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큰아들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는 오른쪽 왼쪽으로 우리 어깨를 감싸며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아빠 보면서 내가 배운 건..."

"삶이 잘 풀릴 때뿐 아니라, 힘들 때도 하나님을 붙잡고 해결하려는 모습이야."


남편도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는 걸 우리도 알아.
그래서 엄마 아빠가 먼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바뀌려고 노력하는 거야.”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우리의 어설픈 몸부림도

자라나는 아이들이 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남편과 저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피차 복종의 여정

이제 남편과 저는 함께 연습 중입니다.

남편은 저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기 위해,

저는 남편을
머리로 세워 주고, 존중하기 위해.

둘 다 자주 실패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실패를 핑계로
서로를 정죄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저희는 둘 다,
여전히 배워가는 사람들입니다.


복종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다

복종.

이 단어가 불편했던 건, 제가 그 진짜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굴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를 먼저 세워 주는 태도.

억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살리는 협력.

명령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선택하는 낮아짐.

그것이 진짜 '피차 복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생각 한 스푼 더:

부부 세미나에서 "복종"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날의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괜찮아.
지금 느끼는 그 불편함이
너를 성장시킬 거야.

네가 ‘순종’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겉모습에 가까웠는지 보게 될 거야.

복종이란 단어가
얼마나 사랑과 겸손과 섬김에 가까운 단어인지
발견하게 될 거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 혹시
저처럼 “복종”이라는 단어 앞에서
걸려 본 적이 있다면,

그 불편함을
서둘러 밀어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 감정이,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끌 수 있으니까요.

표면적인 순종에서,
마음의 복종으로.

말씀을 ‘무기’로 쓰는 자리에서,
말씀 앞에 먼저 무릎 꿇는 자리로.


두 아들을 키우며
매일같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우리 부부처럼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함께 배워갑니다.

그것이 피차 복종이고,
그것이 사랑 같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독자님의 삶에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난해한 성경을 헤매다, 뜻밖에 삶의 답을 찾기까지.

우리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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