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보츠와나 산(San) 커뮤니티가 원하는 교육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곳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다. 정부에서 완벽한 마을 시설들을 준비해 두고 산(San) 족만을 위한 특별한 지원을 하려고 하지만 정작 이들은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한 곳에 머물며 마을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와 반대로 사막에서 자유롭게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전통적인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마을로 들어와서 공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한 삶의 요인이 될 수가 없었다.
자유롭게 본인들 전통 그대로의 삶을 선호하는 대다수의 그들은 결국 마을을 떠나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거나 사막 한가운데 농장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백인 소유의 농장으로 돌아가 저렴한 노동인력으로 일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현대 문명사회 내, 일반 바츠와나 (Batswana) 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본인들 나름의 전통방식을 유지하며 동시에 ‘돈’도 어느 정도 벌 수 있는 농장에서의 노동일이 오히려 나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보츠와나 정부에서 부딪히고 있던 큰 문제점이었고 그들 중, 아이들만이라도 마을에 두려고 하는 것이 정부의 노력이었다. 따라서 내가 직접 만났던 몇 명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부모와 떨어져 학교시설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당연한 권리와 의무가 어쩌면 이들에게는 삶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강조하는 ‘교육’이란 서구식의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일반화된 수학, 영어, 과학 등의 공부가 과연 이들 삶에 필요할까? 사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 교복, 신발, 학용품들 사는 것도 필요 없는 사치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교육을 받고 난 후 궁극적인 목표인 일자리를 구하는 데도 이들에게는 한계점이 찾아든다. 다른 생김새와 언어, 생활습관을 가진 산(San) 족들을 본인들과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때로는 원시 그대로 살아가는 그들을 동물과 비슷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바츠와나 (Batswana)의 삶에 산(San) 족의 일반적인 조화로운 어울림은 극히 찾기가 드물다.
이러한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과 편견, 그리고 현실적인 ‘돈’과 연결되는 가난과의 싸움으로 이들에게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는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일방적인 서구식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산(San) 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교육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또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단위 인식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삶에 조금 더 다가가 함께 토론을 하고 문화를 배워나가면서 그들 삶에 가장 필요한 부분에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산(San) 족 사람들이 원하는 교육은 무엇일까? 한 때 정부의 계획에 맞춰 마을로의 정착을 시도했으면서 다시 야생으로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삶에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3박 4일에 걸친 주민 공동 워크숍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찾은 뉴까디 (New-Xade)와 카카에 (Kacgae) 마을 주민들을 모두 모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 정착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보츠와나 정부에서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고 믿고 우리는 나름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워크숍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놀랍게도 소문을 듣고 찾은 주민들은 각 마을 당 200여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참여율을 보였다. 보츠와나 교육부 공무원들과 지역 의회 관계자들의 협조 하에 우리의 중요한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모두 모인 주민들을 우선 그룹별로 나누어 보았다. 한 번도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정부가 제공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중도 포기를 한 사람들, 초등학교 정규과정을 모두 마친 사람들, 초등학교 이후 중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네 그룹으로 나누어서 직접 이야기를 따로 들어보았다. 우리가 얻고자 했던 질문은 딱 두 가지였다.
‘왜 정부에서 제공하는 학교에 참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룹별로 조금은 다른 답변들이 나왔지만 공동의 목소리를 모은 답변은 이랬다.
‘왜 정부에서 제공하는 학교에 참여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같은 산(San) 족이라고 해도 총 13개의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일반 바츠와나 (Batswana)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부터 배우라고 강요하지요. 내가 말하는 우리말도 읽고 쓸 줄을 모르는데 학교에 가면 영어와 세츠와나부터 가르치니 힘들어요.
우리 부시맨들은 대부분이 알코올과 마약을 즐기며 살아요. 마음대로 술도 실컷 마실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좋아요.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겠어요. 정부의 강요로 인해 정착촌에 들어와 내 자식들을 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초등학교 졸업 후 고등교육으로 진학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것은 어떻게 감당합니까? 고등교육을 나오지 못하면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그럴 것이라면 굳이 초등학교에 괜히 보냈구나.라고 후회를 하기도 해요.
정착촌에 들어와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면 돈이라도 벌 수 있잖아요
다 늙은 나이에 글을 배우겠다고 학교에 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해요.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리 중에 이미 교육을 받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같은 산 (San) 족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 직접 동질감을 느끼며 교육의 혜택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우리들이 빠져 있는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대한 예방법에도 노력을 기울여 주세요. 학교 수업 후에 자유롭게 알코올과 마약 사용을 허락해 준다든지 그렇지 않다면 왜 이것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 같네요.
어려운 영어와 세츠와나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 언어, 세싸롸 (Sesarwa)부터 가르쳐 주세요.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관리해 줄 수 있는 헌신적인 교사 지원이 중요해요.
교육과정 수료 후, 우리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부 등록 공식 수료증을 발급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한 보건위생교육도 필요합니다. 우리 부시맨들은 야생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다 현대화되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의 삶에 익숙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놀다가 다쳤을 때, 곤충에 물려 상처가 났을 때 현대사회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는 잘 몰라요.
기초문해교육을 벗어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직업훈련 교육을 제공해 주세요. 그럼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라도 되겠지요.
그렇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서구화된 학교 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해진 과목과 누구나 배워야 하는 영어로 수업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교육이란 바로 본인들 생활과 가장 밀접한 곳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주민들이 직접 대답해 준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 사업을 준비해 나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문해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산(San) 족 언어인, 세싸롸 (Sesarwa)로 번역하여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언어로 직접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사들을 찾기로 하였고 교육의 기회를 통해 삶의 변화를 느낀 같은 부족 출신 사람의 성공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더 나아가 유아 아동들의 학부모들 대상 보건 위생 워크숍을 따로 개최하였다.
외부인으로 잠깐 사업을 진행하고 떠나는 내 입장에 이번 산 (San) 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그 해결방안은 어쩌면 조금은 긴 시간을 두고 보츠와나 정부와 이곳 주민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교육을 받는 궁극적인 목적, 내가 행복할 수 있고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음과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을 하나씩 이룰 수 있는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