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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ya Dec 11. 2019

왜 프랑스 사람들은 LP에 열광할까?

PARIS LOVES VINYL 행사를 다녀와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레코드점에 들렀던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직접 레코드점을 방문하고 음반을 사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듣고 싶은 음악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제 MP3 다운로드도 필요 없이 음원사이트가 제공하는 수백만 곡의 음악 중 내가 원하는 곡을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최대한 쉽게 '접근'하는 것으로 변한 세상이다.

 

이러한 편리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옛날 그 감성 그대로의 음악을 찾는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이곳 프랑스에서는 유독 한국에서 많이 보이지 않았던 레코드숍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와 같은 프낙(Fnac)이라고 하는 대형서점 음반코너에 가도 음악 CD뿐 아니라 우리에게 잊혔던 LP 앨범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Paris Loves Vinyl 행사장에서 디제이 공연 모습 @Juyapics 2019


오로지 LP 음반만 파는 행사 "Paris Loves Vinyl"


지난 11월 10일에는 파리 시내에서 "Paris Loves Vinyl"라는 특별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파리 시내 약 80개의 음반가게들이 직접 참여하여 10만 장이 넘는 LP 앨범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많은 이들에게 유명한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스와 같은 팝 음악부터 록, 재즈, 힙합, 블루스, 포크 등 시대, 장르, 국가를 망라하며 평소 구하기 힘든 희귀 중고 음반들을 갖추고 있었다. 음반만 파는 것이 아니라 각종 다양한 음악을 직접 선보이는 8명의 DJ들 공연도 만나볼 수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일요일 아침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은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역시 LP 음악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중 장년층들이었다. 40대 이상의 중년층을 넘어 백발의 어른들이 가벼운 크로스백을 몸에 걸친 채, 열심히 음반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취미거리나 마음속 열정을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가 뭐래도 나만의 확실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앨범 하나하나를 꼼꼼히 체크해 나가며 때론 돋보기안경을 꺼내 행여 앨범에 스크래치가 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Paris Loves Vinyl 행사장에서 @Juyapics 2019


Paris Loves Vinyl 행사장에서 음반을 고르는 음악 팬들 모습 @Juyapics 2019


이번 행사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중고의 앨범을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물론 특별 행사를 통해 여러 앨범을 묶어 저렴한 값에 판매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보다도 평소에 구하기 힘들었던 한정판을 살 수 있는 기회였다. 같은 가수의 앨범이라도 프랑스에서 구할 수 없었던 다른 나라에서 제작된 앨범이라든지, 한정판으로 나와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앨범이라든지, 지금의 기술보다도 녹음이 더 잘 된 래퍼런스급 앨범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한정판인 만큼 하나의 앨범이 몇십만 원이 넘을 정도로 가격 역시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희귀판 앨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구매였다. 

 

또한 직접 행사장을 찾아보고 고르는 즐거움과 판매를 하는 레코드숍 주인들의 뜻밖의 추천으로 놀라운 앨범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더했다. 거기서 나아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는 커뮤니티까지 형성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짜릿한 즐거운 순간들이 모여 요즘의 디지털 음반을 구입하는 시대에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프랑스 내 마이클 잭슨 전문가 리처드 씨는 "저는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는 것이 취미예요. 특히 CD 보다도 LP 앨범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LP 앨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운드의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나만의 아이템이 될 수 있는 희귀판을 찾는 즐거움과 독특한 커버 디자인이 있는 오래된 앨범들을 모으는 것도 좋아해요."라고 했다. 

 

중 장년층을 포함하여 20~30대의 젊은 층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았다. 무조건 새로운 것만 최고로 여기며 옛 것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란 때가 잔뜩 묻은 오래된 LP 앨범은 그 나름의 특별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문화와 예술을 중시하며 그것을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프랑스 사람들이 LP 앨범에 열광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생각되었다. 이 시대에 잠깐 왔다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문화가 아닌 계속해서 이어 온 삶의 한 부분이자, 음악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이 바로 오래된 LP 앨범을 통해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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