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 2020년 1월 겨울에 이탈리아 나폴리를 찾았다.
한창 1월의 추운 겨울날,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졌고 이탈리아의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가 떠올랐었다.
하지만 나폴리를 선택한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 프랑스에서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 이웃은 모두 나폴리 출신이다. 왠지 그들의 고향을 찾으면 더 정겹고 반가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이웃에게 나폴리 여행에 꼭 들려야 할 장소, 맛집, 알아두면 좋을 역사적 지식까지 꼼꼼히 물어보고 준비한 이번 여행, 왠지 기대가 컸다. 처음으로 찾는 이탈리아이자, 그중에서도 유명한 관광지 로마나 밀라노가 아닌 나폴리를 첫 여정지로 선택한 데 괜한 특별함을 느껴 보았다.
그렇게 기대에 찬 들뜬 마음을 가지고 찾은 나폴리에서의 여정,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문득문득 경험하게 됐는데,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먼저 나폴리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분명 버스기사 아저씨가 설명해 준 종착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향했는데 다시 굽이굽이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막길을 한창 걷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하니 이미 점심시간은 훨씬 지난 오후 3시를 향하고 있었다.
많이 걷기도 했고 배가 많이 고프던 찰나 프랑스의 친구들이 추천해 준 말이 떠올랐다.
'나폴리에 가면 꼭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슈퍼 같이 생긴 가게에 들려. 그곳에서 아주 싱싱한 햄과 치즈로 간단하지만 아주 근사한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친구들의 추천대로 간단한 샌드위치라도 사 먹고 싶은 마음에 얼른 숙소 밖을 나섰다.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친구들의 말대로 슈퍼같이 생긴 공간이 있었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게트 빵과, 다양한 햄, 이탈리아 특유의 치즈가 진열된 것을 발견했고 벌써 배고픔이 돌았다. 이미 우리 앞에 줄을 서고 있던 동네 사람의 주문을 지켜보았고, 계산대에서 앞 손님의 샌드위치 가격을 보니 1,6유로(약 2,100원)로 굉장히 저렴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 2개와 물 1병을 시켰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총 16,9유로(약 23,000원)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비쌀 수 있지? 영어와 불어로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이탈리아어로 소통이 안되니 결국 그 돈을 지불하고 나와야 했다.
아주 비싼 금액의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나와 햇빛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우선 배고픔을 채우기로 했다. 아마 우리가 관광객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햄과 치즈를 보통의 3-4배로 넣은 것이 보였다.
이렇게 도착한 순간부터 나폴리는 우리에게 기대치 못한 인상을 전해주었다. 프랑스의 우리의 친구, 이웃들로부터 그동안 나폴리 사람들의 후한 인심과 정을 익히 들어왔었다. 하지만 직접 우리가 도착해서 만난 나폴리 사람들은 외부인들에게 조금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물가도 생각보다 비쌌다.
첫째 날 시내 구경을 마치고 친구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피자의 고향 나폴리에 왔으니 피자도 시키고 해산물이 가득한 파스타도 시켰다. 이미 가격이 나와있는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기에 식사를 마친 후 우리에게 전해진 영수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당 자릿세로 1인당 1.5유로씩 (약 2,000원), 서비스비로 7유로(약 9,000원)를 따로 내야 했다. 식당 주인에게 서비스비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우리도 몰라요. 이곳 나폴리 도시의 정치적인 거예요.'라고 했다. 결국 총 음식 비용이 프랑스에서의 외식값과 비슷했다.
나폴리 시내 곳곳을 구경하면서 한 가지 발견한 점은 이태리산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상점들이나 식당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전 세계 어느 큰 도시에서나 보이는 흔한 브랜드인 H&M이나 ZARA도 찾기 힘들고 스타벅스는커녕 맥도널드도 단 한 곳만 보였다. 그만큼 이곳 이탈리아 사람들만의 그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강한 자부심이 보였다.
특히나 옷 하나를 고르더라도 최고의 재질과 디자인을 찾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나이가 지긋한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쇼핑하는 모습에서 나이가 들어도 나만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내가 경험해 온 한국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여행의 막바지에 우리도 패션이 유독 눈에 띄는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상점에 들어섰다. 남성복 전문매장이었고 고급 재질과 원단을 사용하는 데 자부심이 강한 곳이었다. 옷을 고르면서 자연스럽게 상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 지역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 많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하며 우리가 고른 옷과 스카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제품들도 이탈리아 산 맞지요?"
"아니요! 나폴리 산입니다!"
아, 나폴리도 이탈리의 한 도시가 아니었던가? 순간 이곳 나폴리가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인지 착각이 들었다.
나폴리로 여행을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폼페이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폼페이에서의 시간은 기대 그 이상의 감동과 전율을 가져다주었다. 모든 시간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한 평일 낮의 따스한 햇살 아래 그곳에서의 상상의 시간 여행에 빠져 들었다. 내가 만약 2,000년 전 이 도시에 있었다면? 지금 폼페이 도시가 살아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폼페이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간 사실들
1)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폼페이 베수비오(Monte Vesuvio)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가 쌓여 마을 전체가 뒤덮였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연히 한 농부에 의해 땅 밑 4미터 아래 남아있는 마을의 흔적을 되찾게 됐다.
2) 남아있는 도시의 모습 중에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시신이 썩고 난 후 구멍처럼 빈자리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빈 구멍에 석고를 부으니 놀라울 정도로 사람의 형태를 갖춘 형태가 나타났다.
3) 2,000년 전의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아갔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이곳 폼페이는 달랐다. 서민들을 위한 화덕이 있는 빵집, 신선한 음식을 파는 식당, 가죽공방, 오줌을 이용한 대중 빨래방 등 상상 이상의 발달된 상업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4) 폼페이 도시 곳곳에 발견되는 '남근'형상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 곳곳에 사창가의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했고 혹은 부와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5) 폼페이는 지중해의 국제 무역도시였으며 동서양을 오가는 국제 중개 무역지로 항구 주변에는 술집, 매춘부 시설이 활성화됐었다.
6) 폼페이 도시에는 신비의 저택을 가진 재벌급 부자들도 많았다. 당시 색채가 보존된 화려한 '프레스코화'(Fresco) 장식과 모자이크 등이 다수 발견됐는데 부자들의 화려함의 극치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림에서 보이듯, 음식은 다 먹지 않고 바닥에 버리는 것이 당시 부자들의 미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7) 빈부격차는 컸지만 가난 때문에 굶어 죽는 비극은 없었다. 로마시대 정치적 과제 중 하나로 시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8) 로마인들이 개발한 공학적 산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아치형 다리(Bridge)는 공공수도시설 발달을 가져다주었다. 물을 저장하는 급수탱크 시설도 만들었는데 그 용도는 가장 먼저 시민들을 위한 식수 공급, 다음은 부자들을 위한 개인 주택용 수로, 마지막으로는 공중목욕탕을 위해 쓰였다.
9) 로마인들에게 공중목욕탕은 무슨 용도였을까? 왜 그렇게 화려하게 지었을까? 단순한 목욕시설이 아닌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었다고 한다. 목욕시설 외에도 식당, 휴게실, 체육관이 겸비돼 있었고 이곳에 드나들 때만큼은 신분차별이 없었다. 사교의 장이자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10) 폼페이 도시에는 로마식 중앙 대광장이 여러 곳 보이는데 이곳을 거쳐 시민들은 시장도 가고 정부의 공지문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시민들이 직접 투표에 참가할 수 있는 곳이자 법정이 서는 곳이며, 시의원들의 공공 회의장소로 쓰였다.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준 이번 나폴리 여행,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감이 컸던 순간도 많았지만 마지막 날 이곳 산타루치아 항에 오니 그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잔잔한 바다 물 위의 은빛 별이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니 왜 나폴리를 찾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ri)라는 이탈리아의 속담처럼 이곳을 직접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나폴리를 향한 묘하게 설레는 감정들, 그 황홀한 착각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