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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Feb 28. 2022

풍선 꼬리잡기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한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꼬마의 풍선은 결국 천장으로 날아올라갔다.  


금요일 오전. 치과 정기점검을 끝낸 후 즐거운 마음에 아내에게 밖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동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4인 테이블 5개에 2인 테이블 2개로 규모가 작은 것을 빼고는 맛, 가격, 서비스 모두 좋은 곳이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다. 운 좋게 창가쪽 구석 자리에 앉았다. 


문제의(?) 부녀 손님은 우리 부부가 점심을 다 먹을 때 쯤 식당에 들어왔다. 우리 테이블 옆의 옆 2인 테이블에 앉았다. 모녀나 모자는 흔히 보지만, 부녀 둘이 다니는 건 흔치 않다. 그 바람에 눈길을 모았다. 더 관심을 끈 건 딸내미가 손에 쥔 풍선이었다. 은색 가는 줄 위에 매달린 반짝이는 은색 풍선. 꼬마의 나이는 대여섯 살쯤. 


헬륨 가스 들어간 풍선은 본능에 따라 하늘로 치솟으려 한다. 아내에게 눈짓을 했다. 천장에 올라가면 끈이 짧아서 손이 닿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괜히 불안해졌다. 하지만 풍선 끈을 손에 쥔 딸이나 맞은편의 아빠는 그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일은 꼭 그런 때 벌어진다. 꼬마는 끈을 놓쳤다. 풍선은 끈 떨어진 연처럼 천장으로 날아올라갔다. 검은색 천장과 은색 풍선. 눈에 잘 띈다. 사람을 놀리듯 은색 끈이 쉬지 않고 흔들린다. 돌아온 아빠를 본 꼬마는 울 준비를 마친 표정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자신의 의자 위로 올라간 아빠. 손이 닿지 않는다. 한 뼘 쯤 부족하다. 발에 쥐가 날까봐 걱정할 때 쯤 아빠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종업원에게 사다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종업원이 친절하게도 계단이 네 개나 되는 작업용 사다리를 가져왔다. 나는 그런 사다리가 왜 식당 안에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그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는 사다리 셋째 칸까지 올라갔다. 영 불안해 보인다. 맨 위 칸에 올라가면 닿을 듯한데 불안한 아빠는 그냥 셋째 칸에서 손을 뻗는다. 의자 위보다는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닿지 않는다. 


사다리에서 내려온 아빠. 이번에는 종업원에게 집게를 달라고 부탁한다. 민폐를 끼치고 있는 상태임에도 손님들의 관심은 풍선과 부녀에게 쏠려있다. 가정 부엌에서 쓰는 집게보다 훨씬 긴 집게가 등장했다. 업소용인 모양이다. 


사다리에 올라가려는데 풍선이 움직인다. 풍선이 벽 쪽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사다리가 쓸모  없어졌다. 꼬마가 앉았던 벽 쪽 의자에 올라간 아빠. 발돋움을 한 후 집게를 뻗는다. 은색 끈이 다시 팔랑대며 남자를 놀린다. 그래도 이번에는 잡힐 듯하다. 응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지!!” 집게가 풍선의 꼬리를 잡았다. 드라마가 끝날 것 같은 상황. 풍선 끈은 집게 끝을 스르르 빠져나가서 다시 꼬리를 흔든다. 아빠는 풍선 꼬리에 온 신경을 모으고 다시 도전한다. 식당 안의 손님들은 뜻밖의 구경거리에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됐지만 꼬리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아내가 날 보더니 당신이 해보란다. 내가 그 아빠보다 조금 더 키가 커서 하는 말일 게다. 민망한 상황을 지레 걱정해서 나서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웃기는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새 어디 갔다 왔는지 안 보이다 나타난 꼬마. 울어야 하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다. 운다. 울음소리가 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아빠에게 받은 집게를 들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대사도 못 외운 채 무대 위에 올라가야 하는 배우의 심정이 이럴까. 팔을 뻗었다. 뜻밖에 꼬리는 쉽게 잡혔다. 집게를 당겼다. 어? 꼬리는 잡았지만 집게 이가 맞지 않아 그냥 빠져나가버린다. 다시 시도했다. 마찬가지다. 세 번째. 다시 잡았다. 손으로 낚아채려는데 놀리듯 꼬리가 위로 도망간다. 그 바람에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넘어지면 망신도 망신이지만, 의자에서 떨어져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려오면서 테이프를 붙여서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던졌다. 초로의 아주머니 세 명이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흥미 때문인지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서인지 주방에서 일하던 직원까지 나와서 테이프를 집게 끝에다 붙인다. 


아빠는 개량된 도구를 들고 풍선을 공략한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서너 번의 시도 끝에 풍선은 결국 꼬리를 잡혔다. 아빠가 끈을 낚아채는 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당 안의 몇 몇 손님이 박수를 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딴청을 부리던 주인공 꼬마는 아빠가 건네는 풍선을 받고서 웃기 시작한다. 


의자부터 사다리, 집게, (선수 교체), 테이프까지. 테이프로 끝내지 못 했으면 다음엔 무엇이 등장했을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없을 리 없겠다. 검색하는 인간인 나는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있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라고 한단다.


*불각기양(不覺技痒) : ‘자기가 지닌 재주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려움을 참기보다 더 어렵다’는 뜻의 고사성어. <사기열전>의 ‘자객열전’에는 유명한 자객 형가가 소개된다. 진시황을 살해하려던 그와 연관 지어 고점리라는 악사가 등장한다. 축이라는 악기의 달인이었던 고점리는 자신이 식객으로 지내던 집에 들른 악사의 부족한 연주 솜씨를 보고는, 숨어사는 처지도 잊고서 자신의 연주 솜씨를 뽐낸다. 이 일화를 놓고 중국 후한 말의 응소라는 학자가 불각기양이라는 고사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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