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으로 달걀 깨기 연습
‘한손으로 달걀 깨기를 연습하고 있는’ OOO 쓰다
이것은 지난 해 내가 펴낸 책 <남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책을 펴낸 후 이 문장과 관련하여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내용은 대동소동했다. 왜 한손으로 달걀 깨기를 연습하느냐는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바꿔가면서 답을 했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같은 것이었다. 음식 좀 해본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요리와 관련하여 그럴 듯해 보이기로는 칼질이 제일이다. 다다다다다다, 칼이 음식 재료를 위부터 아래로 가른 후 도마를 때리는 소리. 그 소리는 균일한 데시벨이어야 한다. 칼질 소리 중간중간의 소리 없는 순간도 균일한 길이여야 한다. 다 다 다 다 여야 하지, 다 다다 다 다 면 안 된다.
이렇게 균일한 소음과 균일한 묵음으로 칼질을 하고, 그 칼질이 만들어낸 재료가 균일한 크기가 되려면 몇 번이나 손을 베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손 베는 게 무서워서 음식 좀 한다 하게 보이려고 선택한 것이 바로 한손으로 달걀 깨기였다.
한손으로 달걀(*) 깨는 것을 직접 본 건 군대였다. 나는 군대에서 주식과 부식을 관리하는 보직을 맡고 있었다. 늘 취사병들과 같이 생활을 했다. 달걀찜이 반찬으로 종종 나왔다. 군대에서 제공하는 달걀 요리(?)는 삶은 달걀 혹은 달걀찜 두 종류뿐이다. 달걀 프라이처럼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없다(모르겠다. 요즘은 있는지도).
달걀찜을 하려면 달걀을 모두 깨야 한다. 달걀 몇 개 깨는 거야 일이 아니지만, 한 두 명이서 150개를 깨려면 이건 일이 된다. 그래서 달걀찜이 있는 날은 나도 주방에서 일을 거들고는 했다.
그때 보았다. 평소에 주방 한 구석에서 졸기만 하던 고참 취사병이 한손으로 달걀 깨는 것을. 그것도 양손으로. 한 번 더 설명하자면, 양손에 각각 한 개의 달걀을 들고 두 개를 동시에 식판 모서리에 부딪힌 후 양손으로 껍질을 벌려서 식판에 쏟아넣는 것이다.
마지못해 일하는 고참 취사병의 무표정. 그 심드렁함이 오히려 경지에 도달한 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나도 흉내를 내 보았다. 양손으로 두 개 깨기는커녕 오른손 하나로 하나 깨기도 가능하지 않았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군 생활을 마쳤다. 두 손으로 동시에 달걀 두 개 깨기 신공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대략 30년 후. 바꿔 말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내가 우리집의 음식을 전담하면서 나는 다시 한손으로 달걀깨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30년 전의 서툰 상태에서 1cm도 앞으로 나가지 못 했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손에 달걀 범벅을 만들기만 할 뿐이었다.
달걀 깨기를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았다.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고참 취사병은 없지만, 유튜브가 있었다. 찾아보았다. 당연히 나온다. 친절하게 자막까지 넣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하지만 보기에 쉬운 게 다가 아니다. 화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따라해 보니 달걀을 손에 쥐는 것부터가 달라야 한다.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습용으로 쓰려고 혹시 나무 달걀 같은 걸 파는 게 있나 찾아보았다. 반신반의하고 검색했더니 “있다.” 정말 인터넷 속에는 없는 게 없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알아보니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그림 그릴 때 쓰는 모양이다. 왜 굳이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한 개만 필요하지만, 그렇게는 팔지 않아서 세 개 한 세트를 주문했다.
나무 달걀을 손에 들고는 틈나는 대로 연습을 했다. 또다시 연습과 실전은 달랐다. 한손으로 달걀 깨기의 첫 번째 관건은 적절한 두께로 달걀을 깨는 것이다. 양손으로 달걀을 깰 때는 몰랐는데, 한손으로 깰 때는 문제가 다르다. 너무 얇게 깨지면 다시 한번 두드려서 깨야 하는데 그 지경이 되면 달걀 껍질이 뒤섞이게 된다. 그걸 피하려고 너무 세게 두드리면 아예 노른자까지 터지면서 손에 달걀이 범벅이 된다.
이 상태를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두께 조절을 하는 연습은 나무 달걀로 대신할 수가 없다. 나무 달걀은 기껏해야 손에 쥐는 연습에 도움을 줄뿐이다. 결국 나는 한 달 가까이 한손으로 달걀 깨기 연습을 한 후 다시 중도포기를 했다. 나이 드는 바람에 참을성이 커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젊을 때 였다면 1주일도 넘기지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났다.
얼마 전 문득 한손으로 달걀이 깨고 싶어졌다. 달걀을 손에 쥐어보았다. 1년 전의 공부가 몸에 남아있다. 내 손이 기억을 하고 있다. 확연히 느껴진다. 싱크대 모서리에 달걀을 부딪혔다. 어? 적절한 세기로 껍질이 깨져나간다.
달걀 위에 검지와 중지를 걸친 상태에서 엄지와 약지로 껍질을 밀어제쳤다, 노른자가 깨지지도 않았고, 껍질이 뒤섞이지도 않았다. 세련된 행동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손으로 달걀을 깼다고 말은 해 볼 정도가 되었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처음보다 오히려 조금 못했지만, 이번에도 껍질 조각이 섞이지 않았다. 노른자도 깨지지 않았고. 이틀 후 다시 도전. 한 개는 껍질 깨기가 잘 되지 않아서 두 번 두드리는 바람에 껍질 조각이 조금 뒤섞였다. 나머지 한 개는 그래도 한손으로 깼다고 할 정도는 되었다.
1년 전에 공들인 게 사라지지 않았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대견하기도 했다. 다시 연습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서랍에 처박아두었던 연습용 나무 달걀도 다시 꺼냈다. 깨기 위해 달걀을 쥐는 연습에 곁들여 엄지와 약지로 껍질을 밀어올리는 연습도 하고 있다.
혹시 누가 왜 한손으로 달걀을 깨느냐고 물으면 이제는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폼 나잖아요!”(**)
*달걀과 계란 : 달걀은 순우리말이고 계란은 당연히 한자어다. 국립국어원은 한자어인 계란보다 고유어인 달걀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 “폼, 나잖아요” : 이 대사는 오래 전 영화 <투캅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사다. 온통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신입 형사(김보성 분)에게 고참 형사가 “너는 왜 그러고 다니느냐” 하고 물었더니, 엉뚱 그 자체인 신입 형사 왈 “폼 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