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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Nov 29. 2021

파프리카를 담았던 그릇

그 플라스틱 그릇에서 이런 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아침에 설거지를 할 때였다. 파프리카를 잘게 잘라 한동안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던 투명한 그릇이었다.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그 그릇과 포크 두 개만 남은 상황. 더운 물을 그릇에 부었는데 향이 확 피어올랐다. 기습  당한 척후병 꼴이 되었다. 강하지 않지만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는 풋고추 냄새였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파프리카에서도 고추 향이 난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파프리카는 기본 얼개가 고추와 비슷하다. 껍질과 과육 부분이 구분되지 않는 껍질을 자르면 안에 씨가 들어있다. 씨의 모양도 비슷하다. 조그맣고 노란 씨들.


오래 전 파프리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무슨 장난감인 줄 알았다. 음식 재료라기에는 색깔이 비현실적이었고, 모양도 무언가 만화 같았다. 내가 파프리카를 음식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색깔 때문이다. 파프리카를 넣으면, 한 가지 색깔이 자아내는 답답한 느낌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다.


내가 가는 마트에는 두 가지 색깔의 파프리카가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 전에는 파프리카 옆에 피망이 있었는데 요즘 피망은 안 보인다. 파프리카 중에 주황색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피망과 파프리카는 모양이 거의 똑깥은데 이름이 다르다. 주방 일을 시작하던 무렵 아내에게 물었다. “이건 왜 이름이 피망이고 이건 왜 파프리카여?” 선문답(禪問答)이 아니었는데, 아내는 묵묵부답이다. 질문한 내가 지나쳤다.(*)


4년여 전 내가 주방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파프리카의 가격은 한 개에 1천원이었다. 1400원이나 800원이었다면 지금처럼 명쾌하게 기억 못할지 모른다.


그 후에 알았다. 파프리카 가격은 연중 오르락내리락한다. 한동안은 천원보다 비싸면 사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1500원 정도면 필요에 따라 산다. 비쌀 때는 두 개에 4500원씩이나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때는 사지 않는다. 감자나 양파, 당근, 대파처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림하다 나름 꾀가 늘면서 파프리카를 오래, 그리고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작은 크기로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냉동시켰다 꺼내 쓰면 맛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맛이나 향이 아니라 색깔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라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프리카를 씻은 후 씨는 버리고 작은 크기로 잘라 그릇에 담는다. 명란을 담았던 통을 깨끗이 씻어서 거기에 담아 보관한다.


우리집 냉동고에 보관중인 파프리카. /픽사베이의 사진들이 아주 좋아서 포기할까 하다가, 뭔가 아쉬워서 한 장 올렸다.


그 통(그릇)을 그날 아침 식사 후에 씻은 것이다. 설거지 때 피어오른 파프리카 향을 맡으며 냄새에 ‘취했다.’ 설거지통에는 파프리카 그릇 외에 다른 그릇이 없었기에, 그 그릇에 더운 물을 붓자마자 냄새가 피어올랐기에, 그리고 그 냄새가 풋고추 냄새 비슷한 것이었기에 파프리카의 존재와 냄새의 존재를 동시에 느꼈다. 이제까지 색깔로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던 파프리카가 오늘 아침에는 냄새로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오래 전 대학원에서 불교 공부할 때 보았던 ‘가르침’이 생각났다.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고,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 어느 경전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르침 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냄새 이야기를 하자니 한 가지가 더 생각난다. “사향(麝香. musk) 냄새는 아무리 싸매도 감춰지지 않는다.” 이것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겠다.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하나, 원래 파프리카 통에 있던 명란 냄새는 어떻게 된 걸까. 둘,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피망과 파프리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피망은 프랑스어이고, 파프리카는 네덜란드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피망과 파프리카를 다른 채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양에서는 같은 부류로 본단다. 파프리카의 색깔은 12가지나 된다. 내가 놀랐던 것은 피망과 파프리카가 고추 과가 아니라, 가지 과에 속하는 채소라는 것이다. (*참조 : 네이버 음식백과, 나무위키 등) / 이렇게 다 쓰고 났는데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하나, 가짓과(앞에서는 ‘가지 과’로 써서 가지가 드러나게 했다)에 속하는데 왜 가지 냄새가 아니라 고추 냄새가 났을까. 둘, 가지 냄새는 어떤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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