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Oct 28. 2021

어떻게 맛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는 인상적인 대사를 많이 남긴 영화다. 그 가운데 이견 없이 첫손에 꼽힐 대사는 “라면 먹을래요?”이다(*). 그때까지 이영애라는 배우가 간직해 온 이미지를 ‘확 깬’ 대사였다. 그 다음에 꼽을 대사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이다. 이영애의 변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유지태가 ‘눈물콧물 흘리며’ 내뱉은 대사다. 이후 광고 등에서 여러 차례 패러디 되었다. 




맛집. 요즘은 도처에 맛집이다. 맛에 대한 관심이 크다 보니 심지어 ‘뷰맛집’이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그 뜻과 전달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되면서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파란빨강처럼 병존할 수 없는 단어를 섞어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맛과 음식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보라, 벌써 헷갈리잖아.


점심에 불고기를 만들었다. 조금 어폐가 있다. 집에서 불에 볶기만 하면 되는 불고기를 조리했다. 마트에서 그런 류의 불고기를 사다 먹은 지 꽤 되었다. 그 바람에 집에 있는 불고기용 양념 간장이 줄어들지 않는다.


편하게 조리하는 불고기를 한동안 잘 먹었다. 질기지 않았고, 간이 잘 배어 있었다. 서둘러 만들거나 무성의 하게 만들면 고기에 간이 배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먹을 만했다. 양파와 파만 조금 썰어 넣으면 훌륭한 한 끼니가 되었다. 배까지 썰어넣으면 최상급으로 등급이 올라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늘 사먹던 불고기가 어느 날 없어졌다. 마트에서 한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고기 판매하는 매장 전체를 둘러보아도 없다. 실종신고를 할 수도 없고... 그러더니 광양불고기라는 것이 등장했다. 석쇠에 구워 먹는 불고기 말이다. 내가 찾는 불고기는 옛날식 구멍 뽕뽕 불판에 구워먹는 국물이 자작한 그 불고기다.


한달 쯤 전 원래 불고기와 다른 브랜드의 불고기가 등장했다. 지난주에 한번 먹었다. 그런데 느낌이 좀 그렇다. 고기 색깔이 이상했다. 간장을 꽤 많이 넣고 다시 조리했다. 그래도 짜지 않다. 사온대로 그냥 먹었으면 못 먹을 뻔 했다. 질긴 부위도 군데군데 있다. 몇 번을 골라내고서 간신히 먹었다.


이번에 조리할 때는 아예 작심하고 간장과 양파, 파, 마늘을 넣었다. 내가 전화를 받는 바람에 마지막 단계인 볶는 과정을 아내가 담당했다. 부엌에 오니 아내 표정이 좋지 않다. “맛이 이상해.” 간을 보니 아직도 싱거운데, 아내는 자신있게 간장을 들이붓지 못했다. 내가 다시 조리했다.


막상 먹으려니까 간은 맞지만 도처에 힘줄이다. 웬만하지가 않다. 지난번에 간신히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쉽게 결론을 내렸다. 믿을 수 없는 고기를 샀다고.



꽤 오래 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강냉이를 좋아해서 한 봉에 몇 천 원 하는 비싼 걸 샀다. 팝콘과 비슷한 우리나라식 뻥튀기 옥수수다(우리 음식을 설명하느라 팝콘을 끌어오자니 무언가 이상하다). 나는 옥수수는 아예 안 먹는데, 이건 아주 맛있어서 아내의 강냉이를 뺏어 먹었다. 


사람 입맛이 거기서 거기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 맛을 알았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마트의 그 자리에는 강냉이가 없어졌다. 우리 부부는 몇 번에 걸쳐 연구한 끝에 수요일 오전에 ‘리필’된다는 걸 알았다. 한 번에 세 봉다리까지 사기도 했다. 너무 많이 샀더니 나중에는 강냉이가 누져서 두 봉씩만 사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강냉이 맛이 변했다.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옥수수 알이 작아졌다. 자연히 딱딱해졌다. 억지로 먹은 후 한 봉을 다시 샀다. 이번에도 모양이 좋지 않다. 맛도 역시 좋지 않다. 두 번보다 더는 참지 않는 성정을 억누르고 아내를 생각해서 한번 더 사기로 했다. 선반에 강냉이가 수북하다. 이때 이미 다른 사람들도 변한 맛을 알았다. 마지막 기회를 주었으나, 강냉이는 그 기회를 잃었다.


그 후로 우리는 강냉이를 사지는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 늘 수북하다. 회전이 안 되니 맛은 더 없을 테고. 문제는 그렇게 되면 옆에 있는 물건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불고기를 반도 못 먹고 포기했다. 나머지 밥은 내가 만든 배춧국에 말아 먹고 치웠다. 아내가 물었다. “그 불고기 브랜드 기억해?” 아내는 내가 별 쓸데없는 걸 많이 기억한다고 불쑥불쑥 묻는다. 하지만 바뀐 불고기 브랜드는 기억하지 못 했다. “몰라.” “그 매대 위치 알어?” “몰라. 위치가 조금씩 바뀌잖어. 고기 파는 데라는 것만 알지.” 

마지막으로 내가 물었다.

“다시 안 살 거지?”

“물론이지. 퇴출이야.”

뻑 하면 화를 돋우는 나와 달리 아내가 이러면 그 상대방이 진짜 나쁜 X이다.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라면 이 대목에서 한마디 했을 거다. “어떻게 맛이 변하니!”


안타깝다. 눈앞에 이익이 보인다고 두고두고 누릴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단견(短見)이. 나는 이 와중에 한 가지 살림의 지혜를 배웠다. 새로 사는 물건은 그 이름(브랜드)과 사는 곳(매장 내 매대 위치)을 기록해 놓을 것. 신뢰가 담보될 때까지... 기록할 게 아니라, 휴대폰으로 찍으면 되겠다.


*사진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밥 하는 일의 수고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