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Oct 04. 2021

밥 하는 일의 수고로움

아내의 배려…“하루에 두 끼만 하셔”

20년 쯤 전 우리 부부가 한창 여행을 다닐 때였다. 기회만 되면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해외 여행도 할 때였다. TV의 한 아침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부들에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먼저 10위~”

하고는 출연한 패널들에게 답을 맞춰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등장했다. 개중에는 당연하다고 할 만한 이유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답도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 한다. 하지만 1위 내용은 정확하고 선명하게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1위는 무엇일까요?” 했을 때 아내가 중얼거렸다. 

“밥 안 해도 되니까.”

혼잣말 같기도 하고, 나 들으라는 듯도 한 말이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에 “에이, 설마.”하고 반응했다.

정답은 설마 하던 그 답이었다.

“1위는 밥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였습니다.”

그 설문조사 코너는 그렇게 끝이 났고, 토크가 이어졌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도 그런가”하고 물었다. 아내는 당연하지 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밥을 안 해도 되니까 라는 답도, 아내의 반응도 모두 예상하지 못 했다. 그리고 아내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이 바뀐다. 4년 여 전 우리 부부는 자발적 선택에 따라 아내는 부엌일을 졸업했고, 밥 하는 일은 내 일이 되었다. 그 바람에 나는 삼식이가 되지 않았고, 아내는 삼순이??


밥 짓는 일과 관련하여 아직도 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은 외출하고 돌아온 직후의 경우다. 밖에서 집에 돌아왔는데, 바로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은 후 휴식 모드나 TV 시청 모드를 가동한다. 이때 아내의 공간은 거실 소파가 된다. 


반면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는 밥을 준비한다. 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못할 일도 아니고,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이 상황은 생소하다. 아마도 오랜 시간 지금과 반대 상황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관성이 남아있서가 아닐까 싶다.


이때 가끔 아내가 “내가 뭐 좀 할까”하고 묻는다. 대부분 나는 “아니 괜찮아, 됐어”하고 답한다. 과장없는 일상의 모습이다. 이때 내 머릿속에는 과거 일이 떠오른다. 과거에 내가 밥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내가 뭐 좀 할까”하고 물었던 일이 생각난다. 과거의 ‘말 보시〔言 布施〕’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이랄까.

이 사진은 이 글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하지만, 먹음직한 사진을 심어놓으니까 글맛도 더 사는 것 같다.


최근에 아내가 밥 하는 일과 관련하여 우리 집 생활 방식에 새로운 룰을 제기했다.

집에서 먹는 밥을 하루에 두 번으로 제한하자는 것이 골자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밥을 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어서 안 되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얼마 전에도 이런 의견을 이야기 하기는 했으나,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루 세끼를 매일 같이 한다면 매우 어렵겠지만, 중간중간 바깥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실제로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내는 ‘입법화’를 멈추지 않았다. 밥 하는 노동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때는 지식보다 경험이 더 빛을 발한다.


요즘은 해외 여행을 갈 수는 없고, 국내에서 여행을 다니는데 여행지에서 아내가 종종 묻는다. “밥 안 하니까 좋지?” 나는 있는 그대로, “아니, 뭐, 그냥”이라고 답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밥 안 해서 좋다는 느낌이 조금씩 커지는 듯하다. 이러다 밥 한 지 10년쯤 되면 밥 하기 싫어서 여행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남편인 내가 밥 짓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님의 자녀 양육법은 정말로 ‘자유방임’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자유보다 방임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법을 어기거나, 도덕적 비난을 초래할 일이 아니라면, 거의 모두 인정해 주셨다. 


하지만 만약 두 분이 생존해 계셨다면 지금과 같은 우리 부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90%쯤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나머지 10%는 여백이다.


*사진 출처 : 모두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을 지낸 주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