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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Sep 19. 2022

밥 하는 의무

명절을 보내고 생각하는 가사 노동의 의무

이번 추석은 나에게는 편안한 명절인 동시에 불편한 명절이었다. 


나는 추석날(토요일) 오전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해서 연휴 마지막 날인 월요일까지 만 이틀 가량을 아팠다. 당연히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몸이 아프고 열도 좀 있는 듯하다니까 아내는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콧구멍을 어찌어찌 한다는데 솔직히 겁이 났다. 하루만 지켜보자고 미뤘다. 


결과는? 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모른다. 검사는 안 했지만 수시로 체온과 콧물, 목아픔(인후통)을 체크했다. 걱정하던 증상은 없고 근육통만 심했다. 약국에서 사다놓은 종합감기약을 먹었더니 점차 나아졌다. 나는 스스로 코로나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아픈 바람에 이번 명절의 밥 당번은 아내가 되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밥 하는 의무에서 면제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밥 하는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해 먹은 지 5년이 넘었다. 나는 이제 밥 짓는 건 내 일이라고 자임한다. 그런데 그 의무를 안 하고 빈둥거리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는 게 딱 이런 경우였다. 굳이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명절에 시댁에 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며늘아, 너는 직장 생활하느라 힘들었으니 이번 명절에는 손 하나 까딱 말고 쉬어라. 음식은 내가 다 하마.”라고 한다면 그 며느리의 심정은 어떨까. 차라리 자신이 부엌에 들어가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난해에 <남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책을 펴냈다. 만약 책을 읽은 사람이 많았다면 욕깨나 먹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남자가 돼 가지고...’ ‘뭔 할 일이 없어서 부엌에 들어가서...’ 등등 정형화된 욕만 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은 덕분(?)에 나는 욕의 바다에 빠지지 않았다.


그 책을 읽은 지인들은 요즘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질문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다. “(밥 한다고 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네가 정말로 밥해서 먹고 사느냐?” 나의 대답은 분명하다. “당연하지. 내가 밥 안 하면 우리 집은 이제 밥 할 사람이 없어.” 말해 놓고 보니 사실이지만, 듣는 사람은 ‘이게 말인가 뻥인가’ 하며 반신반의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가정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밥을 하고 난 이래, 과거 나에게 음식을 해 준 가족들을 수시로 생각한다. 다 여성들이다. 할머니, 어머니, 장모, 아내... 내 아내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늦게 철 드는 모양’이라고 하거나 ‘추석에 며칠 아팠는데, 아직도 아픈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 없다.


특히나 아침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엌에서 움직이시던 어머니가 많이 생각난다. 50대 후반부터는 몸이 불편하셨는데, 그런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아들놈의 마음은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어머니, 아침은 제가 준비하면 되니까 나가서 운동 삼아 40분만 걷고 오세요.” 할 것 같다. 그러면 나름 유머 감각이 있는 나의 모친은 “아들이 백수가 돼서 좋은 점도 있구나. 그래 밥은 네가 해라.”하고 운동화를 신으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주부(主夫**)로 몇 년을 살아보니 밥 하는 일은 인간의 DNA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이다. 없는 일인 것 같다가 아니라, ‘없는 일이다.’ 성 염색체가 XX든 XY든 관계없다는 말이다. 조금 확대하면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좀 더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더 좋고,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하면 더 좋을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근거 희박한 말에 기대어 한 마디 하면, ‘가사 노동을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눠 하면, 그 가정의 행복은 두 배가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오해를 없애기 위해 한마디 보탠다. “1년 넘게 안 팔린 책을 팔아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ㅎㅎㅎ



*제가 부엌에서 밥 하는 사람인 줄 모르는 분들을 위해... : 저는 집에서 직접 밥을 해서 아내와 먹고 사는 은퇴 남성입니다. 그래서 이 브런치의 필명도 신데렐라에서 파생시킨 신데렐로입니다.

**주부(主夫) : 주부(主婦)의 남성형으로 만든 조어다. 부엌 일을 포함하여 ‘집안 일을 하는 남성’ 정도의 의미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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