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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Feb 08. 2021

중년, 주방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나는 2017년 6월 23일부로 일을 접었다. 이때로부터 약 3년 전에는 23년간 하던 직장생활을 접었고. 이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일이라 함은 돈을 벌기 위해 육체와 정신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나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그 6월 23일로부터 5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손위 처남이 물었다. 일을 안 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5개월쯤 지났습니다. 지루하지 않느냐.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둔 직후 나는 이사를 했다. 17년 만에 하는 이사였다. 비싼 집에서 싼 집으로 이사했다. 차액이 생겼다. 이것이 향후 나의 생활비 원천이 된다. 몇 차례에 걸쳐 검증을 했다. 과연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가. 결론은 ‘지장이 없다’였다. 하지만 잘못 계산했을 경우는 정말 큰일이므로 몇 차례 검토를 했다. 악성 돌발 변수만 없다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사 후 집 정리가 완료되고, 안정이 되었을 때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예정된 계획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한 주일에 두 번 레슨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상은 다르다. 두 번의 레슨을 위해 연습해야 하는 시간은 한 주일에 최소 5시간 이상이고, 상한선은 없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두 시간 가까이를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행위만으로 시간이 잘 가지는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밥 먹고 술 마시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TV에 빠져들어 하루 종일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찾았다.


내가 매 끼니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매일매일의 단조로운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렇다. 나는 일을 그만둔 날부터 주방 일을 전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내는 주방에서 손발 모두 뗐다. 이런 결정을 내리고 실행을 하면서 걱정이 없지 않았다. 하나는, 아내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기우였다. 아내는 주방에서 탈출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30년 가까이 주방에서 고생하느라 정나미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또 다른 걱정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조금 문제가 있는 듯도 했다. 예를 들면, 음식 만들기와 설거지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다. 


ⓒ pixabay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도 하다 보면 시간은 참으로 잘 흘러갔다. 게다가 이 행위는 끼니를 해결한다는 숭고한 명분도 있다. 이 과정에서 외식을 하게 되면 그것 역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나가서 저녁 먹자’는 말에 몹시 즐거워하던 아내만큼은 아닌 듯하나, 주방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다.

이를 위해 이사하면서 주방 꾸미기와 냉장고, 가스레인지 선택 등은 내가 결정했다. 큰 문제는 없었고, 이사 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쓰고 있다. 


주방 일이라고 해서 주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재료 준비를 위한 장보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양 그 나물에 그 밥을 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는 거기서 거기이지만 마트와 시장에서 장보기는 늘 즐겁다. 이런 즐거움이 주방 일의 부담을 상쇄시켜주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주방을 나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행위는 노벨상 수상만큼 의미 있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그에 버금갈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정적으로 결론짓는다. 퇴직 후의 생활을 위해서는 주방 일을 익히는 것은 필수다. 선택이 아니다. 잘한다, 못 한다, 잘할 수 있을까, 못 하면 어떡하나와 같은 생각은 접어두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고,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주방 일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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