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Sep 06. 2021

피아노를 배울 때 용기 따위는 필요 없다

피아노 배우기(1)

나는 요즘 지는 해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그것도 월요일과 수요일을 골라서 그렇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는 피아노 레슨이 있다. 


피아노 배우기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내가 좋아서, 나 스스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무겁다는 소리까지 해가면서 고민을 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지는 해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는 소리까지 하는 것은 피아노를 계속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현재보다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하지 않고, 분명한 희망. 4년 전보다 훨씬 진보한 현재처럼. 


꼭 4년 전인, 2017년 9월 초. 나는 은퇴생활자가 된 지 몇 달 만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은퇴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인 소속감의 부재와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낼 것인가, 예전에 하고 싶던 일을 더 늦기 전에 해 봐야겠다 등등이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표면적인 이유다. 


그렇게 4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왜 이걸 시작해 가지고...’가 절반 정도 된다. 반면, ‘피아노 배우길 잘 했지’ 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로 절반은 된다. 남는 투자라고 하긴 어렵지만, 손해가 난 것도 아니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나는 이제 피아노와 관련하여 나에게 책임감과 희망을 일깨우려고 한다. 그리하여 피아노를 배우느라 보낸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를 통해 의미를 부여받고, 다가올 미래가 조금 더 풍요로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무슨 독립 선언서 같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마음이 무겁다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 어두운 느낌이 자판 주변에 가득한 것 같더니, 상황이 바뀐 게 전혀 없음에도 희망적인 소리를 하니 모니터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다.


내 방 서쪽 창문 아래에 놓여있는 디지털 피아노. 


새롭게 시작하는 브런치 매거진 ‘좌충우돌 학습기-맨 먼저 피아노’는 피아노를 배우는 나에게 자극이 되기도 할 것이고, 격려가 되기도 할 것이다. 설마 포기의 촉매제가 되지는 않겠지... 이렇게 써놓으면 박약한 책임감이 조금이나마 커져서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던 것일까. 나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꾸준히 메모를 남겼다. 때로는 무미건조하게 학습 진도만 써놓기도 했고, 때로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내용을 학습 진도 옆에 상세하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특히 초반에 열의가 넘칠 때는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과 레슨 때에 일어난 일, 그때의 느낌을 일기 비슷하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던 몰랐던 간에, 기록하는 습관은 의미있고 유용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한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지난(至難)한 과정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그려보고자 한다(이렇게 거창하게 쓰고 보니, 조만간 연주회라도 열어야 할 듯하다).


나같은 은퇴자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배우는 데는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써놓고 보니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고친다-아주 조금 장애가 된다).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나의 ‘피아노 공부 도반(道伴)’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반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 ‘동료’가 있다면 이 글을 보고 서슴없이 피아노 앞에 앉기를 권한다. 물론 피아노가 아니라, 다른 악기도 좋다. 


전제 해 둘 것은 이 기록이 피아노를 배우는 전형적이고, 정형화된 과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체계적으로 피아노를 배워 나가려는 전도 유망한 어린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그럴 능력도 없다.


이 기록의 대상과 목표는 비교적 분명하다. 취미생활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는 어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것을 기록하는 과정은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하여,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 피아노가 놓여있는 내 방 서쪽 창문을 바라보면서 ‘빨리 내일 아침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러 가야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랄랄라 랄랄라~~


*지난 해와 올해 합쳐서 1년 가까이는 코로나 19 때문에 쉬었다. 집에서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지켜보고 채근하는 사람 없으면 공부 안 하기는 10대 때나 60대인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일관성 하나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오늘부터 ‘좌충우돌 학습기-맨 먼저 피아노’를 시작합니다. 브런치에 글 게재하는 월, 목요일 중에 새 글을 올릴 겁니다. 연재 계획을 잘 세워서 해 볼까 했는데, 그러다가는 언제 시작할지 몰라서 그냥 살던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무식이 용감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잠깐 걱정도 했으나, 그 걱정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단,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