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기(2)
솔레~시 솔레~시 라레~도 시~~~
솔레~시 솔레~시 라레도라 솔~~~
<어린이 바이엘(상권)> 63쪽의 왼손 연습곡 Var.7을 계이름으로 적으면 이렇게 된다.
<어린이 바이엘>이란, 책 제목에 나와있는 대로 어린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때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다. 흔히 <바이엘 교본>이라고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도 아이들은 이 책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내용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크게 바뀌지는 않은 듯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상, 하 두 권으로 된 책을 네 권으로 나눴다고 한다. 아이들이 지루함을 덜 느끼도록 만든 모양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0년 쯤, 피아노를 배워보겠다는 욕심에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했다. 업라이트 피아노가 아니라 디지털을 선택한 것은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이 책 <어린이 바이엘> 상권을 샀다. 피아노를 사고 나서 한 달 쯤은 피아노를 친 것 같다. 그때 선생님 역할은 아내가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안 돼 피아노 연습은 끝이 났다. 핑계는 많았고, 인내는 부족했다. 그날 이후 피아노는 온갖 물건을 놓아두는 테이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약 7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하면서 ‘바이엘’이 궁금했다. 당연히 사람 이름이라 생각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사람 이름이 맞다.
그의 전체 이름은 ‘페르디난트 바이어’(Ferdinand Beyer. 1803.7.25 ~ 1863.5.14.)로, 독일 태생이다. 인물사전과 백과사전, 나무위키, 위키백과 등을 뒤져도 만족할 만큼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구글을 통해 wikipedia도 찾아보았다. 여기에도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시 우리말로 돌아왔다. 두산백과에는 ‘페르디난트 바이어’라는 인물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독일의 작곡가. 크벨프르트 출생. 피아노곡과 실내악곡을 많이 작곡하였으며,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기도 하였다. 《피아노계제(階梯)》(작품번호 101)는 피아노 연주의 첫걸음으로, 한국에서는 필수적이라 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며, 《바이어》 또는 《바이어교칙본(敎則本)》으로 불린다.
<피아노계제(階梯)>?? 무슨 뜻일까. 한자에 밝은 나지만, 계제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계(階)자는 계단을 가리키는데... 먼저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사다리라는 뜻으로, 일이 되어 가는 순서나 절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적절한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본어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 뜻으로 계단이 나오는 데 이어, ‘초보, 첫걸음, 입문(서)’라는 뜻이 두 번째로 나온다. 그렇다. 일본어의 입문서라는 뜻을 사전에서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영향은 그 뿌리가 깊고 질기다.
바이엘에 대해 알아본 후 내가 정리한 내용은 이러하다. 바이엘의 피아노 교본은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 역사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나의 초등학교 친구들과 나의 아내도 이 책으로 피아노 공부를 했고, 나를 가르치는 문화센터의 피아노 선생님도 이 책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도 이 책으로 공부를 한다. 나를 기점으로 해서 두 세대가 지난 지금도 그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
우리는 흔히 바이엘이라고 하지만, 그의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면 바이어인 모양이다. 이 바이어는 왜 우리나라에 와서 바이엘이 되었을까. 궁금증은 꼬리를 남겼다.
궁금증의 꼬리를 잡아당기니 다른 바이엘이 딸려 나왔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말이다. 또 찾아보았다.
나무위키에 나오는 바이엘 주식회사에 관한 설명이다.
1863년, 프리드리히 바이어(Friedrich Bayer)와 파트너 요한 프리드리히 베스코트(Johann Friedrich Weskott)가 독일 바르멘(Barmen)에 세운 회사. 본사는 레버쿠젠에 있다. 설립자 이름에서 보듯 원래 독일어 발음은 "바이어"가 맞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식 발음인 '바이에루'가 그대로 굳어져버려서 현재도 바이엘로 불리고 있다.
아스피린이 대표제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마데카솔, 인사돌, 카네스텐, 베로카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바이엘 제품이다.(하략)
피아노 교본을 쓴 바이엘이 죽던 해인 1863년에 또 다른 독일 사람 바이엘이 설립한 세계적인 제약•화학 회사의 이름이 바이엘이다. 원 발음 바이어가 바이엘로 변신한 사연을 대략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바이엘은 독일어명 철자가 다르다. 피아노는 Beyer이고, 제약회사는 Bayer이다.
‘라떼’인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피아노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에 관심을 갖지만,
<어린이 바이엘>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은 나처럼 이런 걸 궁금해 하지 않을 듯하다. 관심사가 이처럼 다른 내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책으로 공부해도 되는지 의문이 잠깐 들었다.
내가 이 책에서 무려 앞부분 60여 쪽을 건너 뛰고 시작한 것은 7년 전 혼자 피아노를 연습한 이력 덕이기도 하고, 어린이들보다 계이름을 잘 읽는 능력 덕이기도 했다.
참고로 <어린이 바이엘 상권>에 연습용 악보가 처음 등장하는 11쪽의 오른손 연습 1번곡 악보를 옮겨적어 본다.
도레도레 도.
끝이다. 왜 63쪽으로 건너뛰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번곡이라고 다르지 않다. 도레미 도. 3번곡. 미레도 미.
이런 연유로 7년 전 한달 정도 혼자 연습한 이력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아 밑천이 드러났다.
나는 이렇게 피아노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었다.
2017년 9월 1일 금요일의 일이었다. 이때 내 나이는 만 686개월이었다.
*바이엘 교본의 ‘약발’ :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바이엘 교본으로 피아노를 배우지만, 외국의 경우는 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외국에 피아노를 배우러 유학 간 학생들은 그 ‘다름’에 놀라곤 했단다. 지금이야 이런 정보도 다 알고 있겠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알프레드 성인용 피아노 1급 레슨 교재> 등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