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Sep 30. 2021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 배우듯이

피아노 배우기(3)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후 새롭게 공감하는 것들이 있다.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 배우듯이’라는 명언(?)도 그 중 하나다.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 배우듯이.’

이 말은, 무언가를 배울 때 단지 말로만 때우거나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실제 몸으로 부딪히며 해보아야 배움의 효과가 커진다는 뜻이다.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원하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내 주변의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속담을 아느냐고 물어본 즉, 처음에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이해했다. 나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다.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를 배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명언 같기도 하고, 속언 같기도 하며, 말 같기도 하고, 말 같지 않기도 한 이 말은 내가 대학원 수업 시간에 수시로 듣던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몹시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이 말을 한 교수님의 독특한 화법에 비하면 이건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니다. 그 교수님의 명언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다.


*이불 뒤집어쓰고 소리쳐 봐야 아무 소용없다. -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하다가 뒤에서 구시렁대며 잘난 척 하는 자들을 질타하는 명언.

*비옷입고 샤워하면 뭐하냐. - 무언가를 하려면 제대로 준비를 해서 하라는 명언.

*자기가 싼 #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 -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명언.

등이 있다. 구전 격언을 자신의 언어로 바꿔 표현한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창안해 낸 '독자적인 사상'도 있다.


어찌됐든, 30여 년 후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 배우듯이’를 내가 몸소 실천하고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사는 일이라는 게 종종 그렇게 우연으로 꾸며진다. 


나는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구립(區立) 문화센터로 간다.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를 택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최상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요즘 부모들의 교육관과는 정반대의 교육관이다. 요즘 아이들과, 그리고 그들의 엄마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으로 천만 다행이다. 


문화센터로 가는 내 가방 안에는 소중한 교재 <어린이 바이엘(상권)>과 <건반과 함께 하는 오선노트> 두 가지가 들어있다. 오선노트는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푸는 숙제장이다. 여기에 가정통신문까지 곁들이면 영락없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책가방이 될 것이다. 나는 교재와 공책을 담기 위해 ‘에코백’도 하나 구입했다. 나의 어머니는 수년 전 고인이 되셨다. 때문에 가방과 과제를 챙기는 일은 아내의 도움을 받고 있다.



문화센터의 피아노 교실은 여러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방의 이름은 계이름을 따서 도레미파솔라시, 그리고 #(샵)과 b(플랫) 방으로 되어있다. 어떤 날은 미 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파 방, 혹은 라 방에 들어가기도 한다. 도 방에는 한 달이 넘도록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맨 입구쪽에 있는 그 방을 선호하는 선배 수강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50분의 수업은 스스로 연습하는 시간과 선생님의 점검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별로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선생님 앞에서 피아노를 칠 때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긴장하게 된다. 긴장이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겠지만, 인간이 발전을 하려면 긴장은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선생님이 내주는 과제 이야기를 잠깐 하고 가야겠다. 선생님은 레슨 때마다 숙제를 내 준다. 악보의 계이름을 맞추는 것이다. 누가 보면 이게 무에 그리 어렵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높은음자리표 악보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낮은음자리표 악보는 조금 어렵다. 


낮은음자리표 계이름 맞추기 숙제. 참 잘했어요 도장의 효과와 맞먹는 선생님의 동그라미가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집에서 그 숙제를 푼 다음 레슨 때 선생님의 채점을 받는다. 이때 어린 시절 숙제에 찍히던 ‘참 잘했어요’ 도장의 효용성을 절감한다. 피아노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도장을 대신하는 동그라미는 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은 효과를 안겨준다. 칭찬듣고 좋아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는 모양이다. 하하하.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노를 시작할 땐 ‘바이엘’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