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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Nov 11. 2021

내비게이션이 없던 세상

두물머리(양수리) 가는 길

요즘 같은 세상이면 내가 국도나 지방도의 번호를 기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이란 거의 모든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장착돼 있는 세상이다. 과거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외우게 된 도로번호가 두 개 있다. 46번 국도와 362번 지방도다. 46번 국도는 춘천가는 길이고, 362번 지방도는 양수리 가는 길(*)이다. 


사방팔방 단풍 구경 다닌 글을 썼기 때문일까. 지난 주 목요일 브런치에 글을 올린 후부터 ‘구경 욕구’가 도졌다. 나는 “내일 어디 가볼까”하며 불을 지폈고, 아내는 “좋아, 좋아”하면서 부채질을 했다. 그 남편에 그 아내다. 


둘이 의견을 모은 장소는 양수리였다. 우리말로는 두물머리라 하고, 행정구역상 양수리라고 부르는 곳. 우리 부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3년 정도 이곳을 자주 찾았다. 강을 끼고 달리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좋았다. 특히 연녹색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봄은 사계절 중에서도 최고였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좋고, 차가 심하게 막히지 않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 발길 닿는 곳, 사람 손길 닿는 곳은 어디나 제 모습을 간직하기 힘들다. 처음 양수리를 찾고 나서 2년 쯤 지날 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카페가 생겨났다. 숙박 시설로 짐작되는 건축 현장도 도처에 생겨났다. 게다가 그 좋아보이던 버드나무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내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로 옆의 강이 잘 보이도록 하려는 것이었을까. 미용업을 처음 시작한 미용사가 자른 머리도 그 모습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밀려드는 사람으로 길이 막히는 것도 물론이다. 내가 그곳을 찾던 이유 가운데 온전하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 일대의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느 주말 아침, 새로 생겨난 전망 좋은 카페에서 강을 바라보며 차를 마신 것이 마지막이었다.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아쉽지도 않았고 한동안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방송에서 보니, 그 지역에 집을 지은 연예인들이 많은 모양이다. 찾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양수리와 362번 지방도는 수몰된 지역처럼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나는 방향치다. 내 아내와 형제들 사이에서는 공인된 사실이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길 눈이 밝은 아내는 나의 어두운 길눈을 이해하지 못 했다. 지적 능력 전체를 의심하기도 했고, 뇌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같이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라 늘 지도를 눈이 아프도록 봐야만 했다. 


내가 차에서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게 언제부터였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15년 쯤 된 듯하다. 처음에는 탈부착하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다가, 그 다음에는 차량에 장착돼 나온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스마트폰의 내비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차에 장착돼 나온 내비를 업데이트 해가면서 사용한다. 이제는 내비가 없으면 아예 길을 찾지 못 하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우리집’을 누른다. 


택시를 타보면 택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의 택시 기사들은 길을 잘 알았다. 길을 빨리 찾아야 수입도 많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을 잘 아는 것을 택시 기사의 자긍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젠 다 옛말이 되었다. 택시 기사들도 거의 모두가 내비에 의존한다.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택시 기사는 스마트폰에 대고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한다. 그러면 그 목적지가 화면에 뜨고, 기사는 해당 목적지를 클릭한 후 찾아간다. 


스마트폰만큼 길 찾는 일에 스마트하지 못 한 나는 내비를 켜고 양수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과거에는 미사리 카페촌을 지나서 조금 더 가다가 팔당대교를 건넜던 것 같은데 지금 길은 그게 아니다. 나는 카페촌이 어디쯤에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팔당대교를 건넌 후에는 팔당댐을 지나 조금 더 가다가 362번 지방도로 빠져서 양수리로 갔던 것 같다. 그 모든 과거의 기억, 혹은 지식은 이제 소용없는 것이 되었다. 소용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는 쓸 데 없는 정보가 되어버렸다. 


길이 바뀌고, 길 찾는 방법이 바뀌고, 결국은 내 삶도 바뀌게 되었다.

집에서 양수리까지 걸리는 시간. 지난 주에 탔던 길보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조금 더 빠르다. 

평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올림픽대교에서 양평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몹시도 막혔다. 양양가는 고속도로를 타다가 덕소삼패 쯤에서 빠지는 게 나을 뻔 했다며 아내와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스마트한 내비게이션은 귀는 없고 입만 있으니 내 말을 알아먹을 리가 없다. 내비에 대한 무의미한 분노를 참아가며 양수리에 들어섰다. 점심을 먹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갔다. 다행히 위험하지 않았다. 나이 든 여자 사장님은 친절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사람이 많았지만 코로나 덕분인지 넘칠 만큼 많지는 않았다.


밥을 먹은 후 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황순원 문학촌-소나기 마을’을 찾아갔다. 나는 방향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조금 전 불신하던 내비를 다시 따라가는 수밖에. 다행히 황순원 문학관은 식당에서 멀지 않았다. 그곳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이 문학관은 200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내가 양수리에 발길을 끊고 10년도 더 지나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곳이 동서남북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위)황순원 문학관 전경 (아래)문학관 마당에 인공 소나기를 뿌리면 무지개가 뜬다.


문학관 구경을 끝내고 카페를 찾아갔다.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내비가 찾아갔다. 나는 내비가 시키는 대로 우회전 하라면 우회전 하고, 좌회전 하라면 좌회전 하고, 직진하라면 직진했을 뿐이다. 제한 속도 체크가 있다고 안내하면 속도를 줄이기도 했다. 카페는 아주 컸다. 실내 공간도 넓었지만, 강에 면해 있는 야외에는 10개도 넘는 테이블이 있었다. 뷰 빼고는 얘기가 안 되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강변 뷰가 아주 좋은 카페였다. 강을 바라보자니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가까웠던 친구와 연락이 닿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수리는 우리 부부에게 그런 곳이었다. 서쪽으로 기우는 해 때문에 눈이 부셨다. 한 시간 남짓 앉아 있으면서 두 번이나 자리를 조금씩 옮겼다.  


돌아오는 길, 불만을 표출했던 내비게이션에 다시 의존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나는 단 한번도 목적지를 찾아가지 못 한 적이 없었다. 더듬더듬하면서라도 길을 찾을 수 있던 나의 동물적 본능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직도 인간에게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꼬리뼈처럼 있기는 있으되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표지 사진 : 양수리 카페에서 바라본 한강. 남한강인지 북한강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362번 지방도 : 내가 20년이 넘게 기억하고 있는 46번 국도와 362번 지방도를 이 글을 쓰면서 확인을 해 보았다. 춘천 가는 국도 번호는 46번이 맞다. 그런데 양수리 가는 지방도는 362번이 아니라 352번인 것 같다. 어디서 기억이 잘못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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