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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Nov 22. 2021

결정장애와 면죄부

글쓰기를 고민하다

엊저녁 아내와 나의 대화.

-(아내) 내일(월요일) 브런치에 글 올리는 날인 줄 알지?

=(나) 엉

-썼어?

=아니.

-언제 써?

=몰라.

-쓸 거야?

=몰라.


몰라를 몇 번 말한 후 나는 정말로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글을 쓸까 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생각이었지만, 조금 지나니까 생각은 고민이 되었다. 한참 동안 쓸까 말까 고민했다. 


나의 고민과 무관하게 아침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 생각의 내리막은 점점 더 가팔라졌다. 나는 내가 결정장애가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아침밥도 하기 싫어서 아내와 밖에 나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이런 점에서 출근하지 않는 라떼의 삶은 ‘결정적으로’ 좋다.


카페에서 아침으로 빵을 한 조각 먹고 커피를 마셨다. 해외 여행하던 호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고민했다. 나는 왜 늘 하던 글쓰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늘 하던 일’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늘 하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 그 단어에 그 문장, 그 내용에 그 결론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동어반복도 하루 이틀이지 하고 자책을 하자니, 괜히 몽니를 부리고 싶어졌다. “재미없는 글쓰기를 하는 게 세상에 어디 나뿐인가” 하는 ‘신선한’ 불만이 샘솟았다. 


이제까지 읽었던 책들 가운데 재미를 못 느낀 책들을 열 권 정도 떠올렸다. 이런 생각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책은 늘 정해져 있다.(이제부터 나오는 책 몇 권에 관한 의견은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울러 위대한 작가들과 그 작품을 폄하할 의도가 전혀 없음도 밝혀둔다. 요즘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도 별 재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노인과 바다>. 굳이 누구의 작품인지 밝히지 않겠다. 그보다 조금 더 재미없는 작품, <돈키호테>. 저자가 누구인지 내가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다 알 테니까 그냥 밝히겠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다. 앞의 이름 미겔은 맥주 ‘산 미구엘’의 미구엘과 같은 스펠링이다. 


<돈키호테>의 경쟁 상대는 다른 문학 작품이 아니다. 수면제가 경쟁 대상이다. 수면제를 먹고도 잠들지 못 하는 사람은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소싯적에 요약한 내용을 듣고, 보고서 전체적인 줄거리를 알았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둘시니아 ‘공주’ 등의 등장인물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이제스트 독서의 전형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자 도서관에서 전체 읽기에 도전했다. 수백 페이지 중 백 페이지 정도 읽고 나서 패배를 인정하려던 순간 오기가 생겼다. 억지로 억지로 끝까지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내가 무얼 읽었는지를 한참 생각했다. 알 수 없었다. 책 끝의 장황한 해설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다른 해설을 찾아 읽었다.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어떤 작품인지 알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세계 문학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의미는 알기 어려웠다. 열심히 공부한 덕에 <돈키호테 2부>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2부를 읽는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왜?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 <돈키호테>에 비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몹시 재미있는 책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도 아주 재미있는 책이고. <개선문>은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제 재미없는 책의 정점에 있는 작품을 밝힐 차례다(다시 한번 나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언급해둔다). 두구두구 두구두구, 드럼소리 필요 없다. <파우스트>다. 저자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기로 하고... 설명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설명할 능력이 안 된다. 


엄청난 인내력으로 한 열흘에 걸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그 한 줄 외에 아는 내용이 거의 없다. 괴테가 쓰기 전에 독일에는 유사한 여러 민담(? 혹은 전승?)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복잡하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 노인과 바다, 돈키호테, 파우스트를 읽고도 눈이 아프지 않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권한다. 단테는 단테가 성인지, 알리기에리가 성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신곡>을 읽다보면 작품 안에서 길 안내자로 수도 없이 등장하는 베르길리우스(BC70~BC19. 로마의 시인)의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 <신곡>도 소화 못 하는데...


*출처 : 대문 사진과 이 사진은 pixabay.


부족한 내 글에 면죄부(*)를 부여하려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신성모독은 아니지만 ‘서성모독(書聖冒瀆)’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은 걱정이고, 이제 결정장애 문제를 정리해야겠다.


위키백과에서는 결정장애를 이렇게 요약해 놓았다. “'결정장애'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을 표현하는 신조어이다. 결정장애는 의학적으로 '질병'이라고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정장애'보다는 '선택불가증후군'등이 더 나은 표현이다.”

질병이 아니라니 일단 다행이다. 이제 내가 결정장애가 아니라는 예를 한 가지 들어본다.


얼마 전 카페에서 주문을 하려는데 앞에 있는 젊은이가 한참을 고민한다. 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그 젊은이의 등짝에 장풍(掌風. 맞다, 무협지에 나오는 그 장풍)을 쏘았다. 주문을 기다리던 종업원이 얼굴에 ‘제발 이제 주문 좀 해’하고 쓸 때 쯤 되어서 앞의 젊은이가 한 마디 했다. “제가 결정장애가 있어서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열 세 번 째로 쏘려던 장풍을 거둬들였다.


이 일화를 떠올리니 나는 결정장애가 아니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다. 


매 끼니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만 밥을 챙겨먹는 건 아니다. 돌아가신 모친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배고프지 않아도 때 되면 먹는 거고, 맛있지 않아도 때 되면 먹는 거다.”


오늘은 월요일,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고 스스로 정한 날이다(왜 이렇게 정해놓고는 난리를 치는 거냐). 때 되면 밥 먹듯이 재미없더라도 글을 하나 써서 올려야 한다. 그런데 3일 후면 목요일이다. 그 날은 또 어떻게...??!!!  


*면죄부 : 이 면죄부라는 단어의 출처인 가톨릭에서는 면죄부(免罪符) 대신 면벌부(免罰符)가 맞다는 주장을 한다. 더 나아가 대사(大赦)라는 단어를 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Indulgenc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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