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기(8)
손가락 핑계로 한동안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았다. 새해부터 연습한다고는 해놓고 1주일이 되도록 한번 밖에 연습을 하지 않았다.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 하면서, 피아노 배우기에 관한 글도 한동안 올리지 않았다. 눈에서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도 멀어질까 우려되어 더 늦기 전에 피아노 배우기의 맥을 이어보려고 한다.
어떤 곡은 악보를 처음 대하면 도대체 어떻게 쳐야할지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그런 곡도 있다. <바이엘>이 이러니 그 다음, 그 다음은 도대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습 후에도 이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빨리 피아노를 포기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하다. 정신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다른 데 쓸 수도 있을 테니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연습을 거듭하면 거의 모든 곡이 처음의 막연함과 달리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내가 아직 뜨거운 맛을 덜 봐서 하는 말일 가능성도 물론 있다-이 말은 몇 년 후 현실이 된다). 즉,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삼십 번, 사십 번 연습하다 보면 처음의 막막함은 줄어들고 어떻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라난다. 그러면서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맷집도 좋아지는 것 같고, 눈에 확 띄지 않지만 실력이 늘고 있을 것이라는 자족감도 생긴다.
그러다보니 피아노를 시작한 후 등산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열 걸음을 한 번에 떼는 등산은 없다. 어쩌다 한번 넓은 보폭으로 한 걸음 뗄 수 있을지 몰라도, 두 걸음도 어렵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씩 걷다가 뒤돌아보면 멀리 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 문화센터가 그렇겠지만, 내가 다니는 피아노 연습실에서는 옆방에서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이엘 상권>보다 더 아랫 단계는 없기 때문에 나는 앞서가는 선배들의 연주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모르는 곡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잘 아는 가곡을 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던 팝송을 치기도 한다.
그들은 나에게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다. 절망이라면 나는 저렇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희망이라면, 나도 저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2~3주 동안 같은 곡을 연습하는 경우가 있다. 똑같은 걸 저렇게 오래 연습하나 하는 교만한 생각을 하다가, 발표회에서 독주라도 하는 모양이라고 겸손 모드를 작동해보기도 한다. 그 ‘선배’도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때 또 다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한걸음씩 발걸음 떼기다. 내가 아는 초보운전 표시 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저씨도 처음엔 초보였지요’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잘할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메시지에다 당신도 처음에는 나처럼 잘 못했잖아 라는 항변의 의미도 담은 표현이다. 그런 사람에게 무어라 하겠는가. 나는 날 때부터 운전을 잘 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니 당신은 가망성이 별로 없다고 초치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바이엘 하권 중간 부분을 치는 지금(이 글은 당시 시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지난 시간에 어려워했던 바이엘 상권의 곡들을 다시 쳐본다. 여전히 어려운 곡들도 있지만, 거의 모두가 칠 만한데 하고 느껴진다.
한걸음씩 걷다보면 꼭대기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운전하면서 운전 배우듯이, 피아노 치면서 피아노 배우듯이 하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