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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Dec 20. 2021

나는 소망한다, 다시 피아노를 배우게 되길

출처는 기억 못 하고, 내용만 대충 기억하는 오래된 서양 유머가 있다.


노부부에게 어느 날 신령님(*)이 나타났다.(*신령님이 등장하니까 어째 서양 유머 같지가 않다. 아무튼...)

“너희들이 평생 선하게 살았으니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겠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가 “아,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랬더니 식탁 위에 소시지가 떡 하니 나타났다. 소원이 한 가지 이루어진 것이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 아까운 소원을 저렇게 써버리다니. 할머니가 소리쳤다. “그 놈의 소시지, 저 영감 코에나 붙어버려라.” 그렇게 되었다. 당황한 노부부. 아무리 소시지를 떼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다시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소시지가 코에서 떨어지게 해주세요.” 그대로 되었다. 그 노부부의 소원 세 가지는 그렇게 성취되었다. 어이없고 웃픈 이야기 속에 무언가 교훈이 있는 듯하다.


<도깨비>라는 몇 년 전에 했던 드라마를 며칠 전부터 넷플릭스에서 정주행하고 있다. 배우 김고은과 공유, 이동욱, 유인나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드라마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저승사자(이동욱)의 사무실에 어느 날 살아있는 인간(남성)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함께 있던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죽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데 산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 화장실 좀 쓰게 해 달라”고 다급한 표정으로 부탁을 해 왔다. 화장실 방향을 알려주자 그 남자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한다.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구나.”


지난 여름 용평을 여행할 때 발왕산 케이블카를 탔었다. 산 정상의 케이블카 탑승장에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들의 등신대 사진이 있었다. 한 장 찍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러워하는 직종이 한 가지 있었다. 방학이 있는 직업이다. 초중고등학교의 선생님이나 행정직원, 대학의 교수나 행정직원이 그들이다. 직장생활 하는 동안 남의 떡에 별 관심 없고, 부러워하지도 않았지만 방학만큼은 부러웠다. 그들은 전생에 무슨 선한 일, 좋은 일을 많이 했기에 방학이라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가.


방학보다 더 큰 떡으로 대학교수들의 안식년이라는 것이 있다. 서양 대학들의 경우는 상당히 보편적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아주 가깝게 아는 대학 교수가 내년에 세 번째 안식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벌써 두 번의 안식년을 향유했고, 내년이 세 번째다. 도대체 전생에 어떤 일을 했기에 직장인이 세 번씩이나 안식년을 누릴 수 있는가. 


물론 당사자들의 말은 다를 것이다. 방학이라고 해도 그냥 만판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초중고 교직원들은 방학에도 당직을 하러 학교에 가야 하고, 새 학기 교안 준비도 해야 한다고. 안식년을 보내는 대학교수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전과 달리 눈치 볼 것이 많아서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도 1년간 안식년을 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기껏해야 6개월이나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안식년 중에도 연구활동을 해야 해서 쉴 틈이 없다고. 


노부부의 희망인 소시지처럼, 혹은 저승문도 열어제낄 만큼 다급했던 어떤 인간처럼 나의 방학에 대한 절실한 열망이 하늘에 닿은 모양이다. 다만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나는 4년 전  은퇴와 함께 매일매일이 방학인 생활을 시작했다. 일일시호일(一日是好日)이 아니라 일일시휴일(一日是休日)이다. 


그런데 그게 참... 그렇다. 정신없이 바쁘게, 눈코뜰새 없이 일을 할 때 간절하던 휴일이 매일매일이 휴일이 되니까 한계효용이 뚝 떨어져버렸다. 어쩌다 상감마마 밥상을 받아야지, 매 끼니 그렇다보면 별 감흥이 없어지는 것처럼. 그래서 은퇴 백수가 된지 두어 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몇 달 후에는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는 1년 만에 정리하고 영구 방학 선언을 했지만 피아노는 지금도 계속한다.


피아노 배우기가 지난 가을쯤부터 부쩍 재미있어졌다. 악보를 보는 능력이 좋아지자 그 전에는 치기 어려웠던 곡들을 어떻게든 쳐볼 수 있게 되었다. 재미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피아노 배우기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고, 생활의 활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세상일은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내가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던 구립 청소년센터가 이번 달, 즉 12월 초부터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서 1년 넘게 문을 닫았는데, 이번에는 건물 공사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런 엄청난 일을 휴관 열흘 전쯤에야 알려주다니... 


12월 초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간 닫을 계획이라더니, 내년 3월까지 문을 닫을 모양이다. 정확한 일정은 나중에 알려준단다. 그 문자를 보고는 계획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심정이 생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피아노 교실은 문을 닫았고, 나는 자율적으로 피아노 공부를 해야만 하게 되었다. 


나의 친구 디지털 피아노


장기간의 ‘코로나 휴관’ 시절, 학교 다닐 때 방학 내내 놀던 옛날 버릇을 오늘에 되살려 피아노 뚜껑에 먼지 쌓이도록 방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율 학습계획을 세운 후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는 역시 지켜보고, 잡아끄는 선생님이 있어야 잘 되는 모양이다. 처음 열흘 정도는 나름 피아노 연습을 했으나, 금방 방학 모드에 돌입했다. 방학이 아니라 조만간 휴학을 할 듯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피아노 학습 계획을 확인하고, 연습 일정을 점검하려고 한다. 


직장 시절 그렇게 소망하던 방학을 이제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 소시지를 붙였다 떼는데 에너지를 다 소비해 버려서야 되겠는가. 도깨비와 저승사자도 깜짝 놀라게 할 절실함으로 이번에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내년 3월까지 작심삼개월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모쪼록 내년 봄에 딴 소리하지 않기를...


이번 주말이 성탄절이네요. 신데렐로의 브런치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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