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항상 생각나는 건 맛있는 음식과 술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치이고 다친 날이면 매운 것들이, 짜증 나거나 신체적으로 구르다 온 날이면 달달한 것들이 당긴다. 심지어 나는 술도 너무 좋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어느 주종이든 항상 곁들여야 한다.
물론 힘들고 지칠 때, 맛있는 거 먹으면서 스트레스 풀고 훌훌 털어내는 것만큼 인생의 진리는 없다.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세상에는 날 힘들게 하는 일들이 가득하다. 다니는 직장에서, 가족들이랑, 친구나 애인 사이에서 매번 달달 볶인다. 자극적인 음식들과 술 생각을 하지 않을래도 안 할 수가 없다. 당장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술이 너무 마시고 싶다. 낮 2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실 술에는 낮 밤이 없다.)
혹시라도 글을 읽는 누군가는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그냥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또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난 '다이어터'이기 때문이다. 적으면서도 헛웃음을 감출 수 없지만, 명백히 그렇다. 난 다이어트 중이고, 그래서 매일 음식과 술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없다. 사실 이런 고민은 누구나 할 것이다. 하루에도 배달 어플에 들락날락하며 엽떡을 시킬지 말지, 우리는 매번 번뇌한다.
'먹으면 살찔 것 같은데'부터 '어제도 맛있는 거 먹었잖아, 오늘은 안돼 참아야지' 등 많은 생각을 하다 결론은,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고 행복하자!'에 다다르고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너그러워진다.
여기서 적당히 먹고 행복하면 문제가 전혀 되지 않지만, 제일 큰 사단은 이제 벌어진다. 전부터 참았던 음식에 대한 욕구들이 스트레스를 선두로 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맛있는 음식들을 다시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 앞에 놓인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밀어 넣는다.
나중에는 배가 부르다 못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와도 미친 사람처럼 먹어댄다. 결국 모든 것을 다 먹고 나면 남는 건 후회와 자책, 우울감과 살이 찔 것이라는 공포뿐이다. 이런 식습관은 위와 식도를 상하게 하고 무엇보다 정신에 큰 상처를 입힌다.
폭식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배부르면 그만 먹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 겪는 이들은 그게 안돼서 죽고 싶다. 마치 내가 짐승 같고 음식 하나를 제어하지 못함에 무기력해진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런 루트를 계속 반복하는 것일까. 벗어날 수는 없을까?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 말고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대체제를 찾아야 한다. 물론 음식과 술만큼 완전하고 완벽한 해소제는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음식에 질질 끌려 다니며 자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완벽하게 그 대체제를 찾지는 못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여전히 엽떡이 생각나고 맥주가 떠오른다. 그래도 요즘은 전만큼 폭식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미용실을 가거나, 옷을 왕창 사거나 시외버스를 예매해 대강 떠나버린다.
만약 지금 폭식으로 고생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 본인 잘못이 아니다. 주변에서 멸치 볶듯이 달달 볶아대고, 새처럼 쪼아대니 나에게 바라는 것도 없고 말 한마디 걸지 않는 음식에게 기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조금씩 고치고 나아져서 다시 먹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길 바란다. 힘들고 지치는 어느 날에는 음식과 술에게서 위로를 받아도 괜찮으니, 망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