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가('님'자는 오늘까지만 생략한다.)의 머리채를 잡으려는 순간, 그가 똑 부러진 모습으로 말했다.
"나, 당신 남편 같은 스타일 좋아해요.
사람 좋아하는 건 내 맘 아닌가요?"
황망한 순간에도 끝내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방관하는 그.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울면서 깼다. "나빴어, 당신 나빴어!"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아닌 새벽에 깨자마자 내게 사과를 하고 달래야 했다. '평소 짐작하지 못한 꿈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적었다.
그날의 이튿날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며칠 만에 창밖의 햇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봄비에 말라붙은 벚꽃과 흙먼지로 뒤덮인 차를 세차하러 나서는 남편을 따라나섰다. 뱅글이 안경을 쓰고 노 메이크업으로 모자만 눌러썼다.
아메리카노 두 잔과 먹고 싶었던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포장해서 24시간 셀프 주차장에 도착했다. 남편이 물줄기를 차에 쏘아대는 차 안에서 10년 산 도시가 언급되는 소설 한 권을 시작했다. '생각지 않은 호사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도 적었다.
실외 세차를 마친 남편은 내게 마른걸레와 실내 세정제, 가죽 시트 세척제를 건넸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그것들을 건네받았다. 그래, 이 차를 운전하는 시간도 내가 많은 걸, 한 번도 세차를 따라온 적도 없잖아. 기쁘게 거들었다. 내 손으로 닦고 문지르니 차에 대한 보통의 애정이 아주 많이 상승했다. 사이드 미러에 쓰여 있는 문구,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아, 정말 그렇네. 신기하다.
모처럼 찾은 호수 길. 지난달과는 사뭇 다른 공기와 바람과 나무와 꽃들과 사람들. 기분 좋은 햇살과 산책 소소하고도 시사적인(!) 대화까지 다양한 주제를 나누며 크게 한 바퀴 둘렀다.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도 적었다.
주차장으로 거의 다 와서 갑자기 배가 아팠다. 커피와 바스크치즈 케이크 탓일까, 간밤에 마신 캔맥주 하나 탓일까. 부글거리는 배를 잡고 뛰어간 화장실에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다리를 배배 꼬고 간신히 참았다 들어섰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원하는 때에 용변을 볼 수 있는 게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것' 비슷한 문구가 떠올랐었다. 나와서도 다시 부글부글, 또 다녀와서도 한 번 더 부글부글. 이제 괜찮은 것 같아 주차장을 나서다가 "스톱!!!"을 외치며 다시 차를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서너 번을 들락날락한 후에야 간신히 비상 상황은 종결되었다. 그래도 마침 화장실이 가까워 다행이다. '화장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도 적었다.
장을 보러 들어 선 마트의 주차장. 조수석 쪽으로 10kg 쌀을 실은 카트 하나가 스르륵 다가와 쿵 하고 부딪혔다. 맙소사. 원래 새 차인데 방금 세차를 마친 정말 새 차인데. 움푹 파인 자국이 세 개나 생겼다.
남편은 "아, 짜증 나!"를 한 번 외치고는 평소의 그답게 조용히 차분히 깔끔하고 확실하게 처리를 했다. 가해 차량, 아니 가해 카트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한 젊은 엄마는 덤덤하게 사과하고, 아니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 않고 연락처만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의외의 빌런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고쳐 적었다.
장을 다 본 후 발견한 '찌그러짐 복원'이라고 적힌 수리점에 들러 견적을 받았다. 놀란 건지 쿨한 건지 알 수 없던 그녀에게 전화로 알린 후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 그래도 착하다. 되게 젠틀하게 대응하네. 화도 안 내고." "화 내서 뭐 하노. 당신이 밖에서 운전하다 그럴 수도 있다. 다 내가 하는 만큼 돌아오는 거다."
다사다난 호사다마 새옹지마 십시일반... 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하루. 삼겹살을 구우며 잔을 부딪히며 마무리했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생각지 못한 여러 일들을 함께 겪어 나갈 남편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 변함없이 내 곁에 있음.'이라고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