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개의 봄을 본 사람

생일 주간을 보내며

by 씬디북클럽



마흔넷 생일상,
잔치는 끝났다.



크기와 브랜드가 다른 케이크 상자 세 개를 잘 접어 분리수거를 하고 들어 왔다. 한 솥 끓여 놓은 미역국 한 팩을 냄비에 넣고 가스불을 켰다. 냉장고를 털어 밥을 쓱쓱 비비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길고도 짧은 일주일이었다.

가족, 친구, 전 직장 동료, 현 직장 동료, 책으로 인연이 된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책 꽃 커피를 주기도 받기도 좋아해요"라고 하도 떠들고 다닌 걸까. 고민과 고심을 오가며 장바구니를 채울 책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하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이라고들 하지만, 눈으로 향기로 담는 10일간은 충분히 붉고 아름답다. 수개월 간 마실 커피 쿠폰도 생겼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찼다. 받은 사랑과 친절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차고 넘치는 중이다.



"너 낳던 시절은 어째 하나도 기억이 안 나냐."

오후 2시 반 근처의 생시로 알고 있었는데, 이여사는 단호하게 낮 12시 반이라고 했다. 그 이외에는 하나도 기억에 없다고 했다. 세 살 터울 남동생의 출산 얘기는 생생히 기억했다. 엄마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자마자 소눈깔 같은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삐질 뻔했다. 생일 미역국 못 끓여 주어서 미안하다 했고, 나는 '싸 주는' 음식도 '사 주는' 음식도 좋으니 괜찮다 했다.

"우리 딸은 참 사진 찍는 거 좋아해."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니깐. 여기 봐봐."

내내 투덜대면서도 폰을 들이대면 표정 관리를 한다. 본인 눈 감았다고 다시 찍으라 한다. 그만 찍으라고 하더니 예쁜 꽃이 나오게 다시 찍어달라 한다.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마워."
"뒤에 차 온다. 얼른 차 빼."

후다닥 밥을 먹고 후다닥 서점 구경을 하고 댁에 모셔다 드렸다. 잊고 있었던 한 마디를 차창 밖으로 던졌고, 이여사만의 스타일로 답이 돌아왔다. 웃으면서 돌아오는 길, 좋아하는 벚꽃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날리는 꽃가루에 눈이 매웠다. 좋아하는 핑크빛 대신 연둣빛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이제 44개의 봄을 본 사람이다.




p.s. 마지막 문장은 <아름다움 수집일기> 이화정 작가님의 프로필 문구를 살짝 따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