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터울 남매를 첫째가 다섯 살이 될때까지 집에 데리고 있었다. 만 3세까지는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 많은 육아서들이 반복 재생하던 그 말을 , 종교도 없는 내가 신의 말씀처럼 떠받들던 시절이었다.
나를 찾고 자기 계발을 하고 다양한 책을 읽고 하는 일은 당시의 내게는 가당치도 않은 것들이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지금은 나보다도 애들이 우선이지. 자기를 찾는 엄마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오롯이 아이들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위해야 하는 게 엄마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한 것들이 참 무겁고 버겁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쓰기 생활자 소녀는 여러 마음들을 일기장에 교환일기에 손 편지에 적었다. 쓰기 생활자 미혼의 직장인은 싸이월드에 좋은 날도 안 좋은 날도 기록을 남겼다. 쓰기 생활자 남매맘은 블로그에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문화센터에 가서 오감놀이 잼재미 트니트니 수업 사진을 올렸다. 엄마들과 품앗이 수업 사진을 올렸다. 금쪽같은 내 새끼 자랑을 하고 싶어서 초상권이고 뭐고 신경도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예쁘다는 덧글은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피곤에 대한 보상이었다. (지금은 모두 비공개로 바꾸었다.) 남매와 보낸 많은 시간들은 남양유업 다이어리 여덟 권에 차곡차곡 담겨 있다.
딸아이는 말을 참 잘했다. 생각지 못한 기발한 표현이나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웃게 기쁘게 눈물 나게 했다. 길에 핀 꽃을 보고도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도 어린 동생과의 일상에서도 아이는 많은 말들을 꽃피워냈다. 지금 읽어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속 그 순간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아이가 입었던 옷과 표정이 생생한 장면도 있다. 아이의 말속에서 나는 웃었고 울었고 놀랐고 기뻤다. 우리는 서로의 말들 속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다.
'마주 이야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들을 기록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종알종알 재잘재잘 작은 교실 안에서 많은 말들이 피어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에도 귀를 열고 아이들의 말을 주워 담는다. 남의 집 아이들의 말들이 그 시절의 내 아이의 말들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쓰기 생활자 신입교사는 둥실 떠다니는 그 말들을 놓칠세라 잊힐세라 얼른 수첩을 꺼내 끄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