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린이를 만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읽기가 일기가 되다

by 씬디북클럽




"남매를 낳고 제 손으로 키웠습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력을 쌓아 온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귀를 열어 경청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10년 만의 면접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했다.

친척 동생들을 잘 데리고 놀았다. 10살 어린 동네 꼬마를 친동생보다 예뻐한 순간도 많았다. 입시 학원에서 중고등 학생들을 만났을 때보다, 어린이 영어 학원에서 초등부와 유치부를 가르칠 때가 더 즐거웠다.


아이들을 낳아 내 손으로 키웠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내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비교적 순한 맛의 아이들이었지만 매운맛의 순간들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바라던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잠들기를 바랐다. 아이들 덕분에 힘이 났지만 아이들 때문에 힘겨웠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 한 잔을 들고 가는 여자를 마주치면 끌던 유모차를 멈추고 뒤돌아 보곤 했다. 높고 높은 가을 하늘의 구름만 보아도 눈물이 솟구치곤 했다.


토끼 선생님이 되었다.

'솔' 톤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문화센터 어린이집 홈스쿨 수업을 했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상냥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남의 아이들을 만나며 나의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났다. 남의 아이들에게 하듯 나의 아이들에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퇴사 후 1년을 집에서 놀았다.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하며 하고 싶었던 모든 일들을 했다. 이제 나의 아이들은 입고 먹이고 재우지 않아도 되었다. 먹거리만 있으면 엄마가 '엄마가 아닌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을 말없이 지지해 주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있는 날이면 세 살 네 살 아이처럼 품을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청소년이 된 나의 아이들에게 여전히 '우리 아기'라고 부르곤 한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첫 달은 모든 아이들이 마냥 예쁘기만 했다.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요즘 놀잇감은 어쩜 이렇게도 정교하고 아기자기한지. 요즘 그림책을 어쩜 이렇게도 섬세하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지. 금세 한 달이 지나고 첫 월급이 들어왔다. 많지 않은 액수지만 그보다 큰 장점들을 떠올렸다. 1년짜리 적금을 시작했다.

두 달째부터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과 행동이 느린 아이, 아토피로 온몸 보이는 곳의 살갗이 성하지 않은 아이, 분에 못 이겨 친구를 밀치는 아이, 막무가내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 놀이를 주도하고 제 마음대로 하려는 아이, 색연필 선 하나가 삐져 나가면 종이가 찍어지도록 지우며 씩씩대는 아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조용히 구석에서 눈물짓는 아이, 입의 혀처럼 굴며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 "선생님 싫어!" 하고 팽 돌아섰다가 "선생님 사랑해요!" 하면서 품 안으로 달려오는 아이, 다른 친구 엄마가 데리러 오면 못 본 척 블록 쌓기에 집중하는 아이, 해가 어둑해지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 엄마가 데리러 오면 작은 주먹으로 팍팍 엄마 가슴을 때리며 우는 아이... 모든 모습에서 나는 나의 아이들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기쁘고 슬펐다. 벅차고 아팠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엄마 마음 반, 교사 마음 반의 석 달을 보내고 있다. 교사일 때는 교사의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들 나보다 10살 어린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엄마 마음을 접고 교사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래도 한 번씩 엄마 마음을 열어 말없이 품 안 가득 꼬옥 안아주고 싶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