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캡티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 읽기가 일기가 되다.

by 씬디북클럽



"저희 차, 잘 부탁드려요."




기어코 터졌다. 빨간 모자를 쓰고 아이스 워싱 데님 스키니진을 입은, 나보다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중고차 딜러에게, 비타 500 한 병과 자동차키를 건네면서, 나는 기어코 울고 말았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온 새 차. 중고 마티즈와 라세티를 몰았던 내게는 너무 크고 높게만 느껴져서 운전하기도 부담스럽고 무서웠던 첫인상. 보조석을 다 젖혀 눕히면, 택배 아저씨보다도 더 많은 교구들을 싣고 이동해야 하는 토끼 선생님의 든든한 짐칸이 되어주었지. 맨 뒤에까지 좌석을 만들면, 성인은 7명 남매의 친구들은 10명까지 너끈히 태울 수 있었지.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수업 시간 대기를 하고, 아주 가끔씩 신호 위반과 주차 위반을 하고, 퇴근시간 꽉 막힌 길에 서 있고, 라디오 음악을 함께 듣고, 부슬부슬 비 내리는 밤을 함께 달리고, 또 우리는 또.. 나는 어쩌자고 너에게 '캡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던 걸까. 시동을 걸고 끌 때마다,

"안녕, 캡티. 오늘도 잘해보자."

"캡티, 수고했어, 내일 보자."같은 정겨운 인사를 나누었던 걸까. 너를 어떻게 보내려고 나는 네 이름을 그렇게 수시로 불러주었던 걸까.



나를 suv 모는 여자로 만들어 주어서, 든든한 트렁크를 열어 주어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태워 주어서, 커다란 차로도 요리조리 운전 실력과 주차 실력을 늘게 해 주어서... 그리고... 180도 가까이 회전하는 큰 사고에서도 너의 오른쪽 옆구리들을 내어주며 나를 다치지 않게 지켜 주어서.. 정말 정말 고마워. 너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줄 수 있는 좋은 주인 만나 앞으로도 더 신나길 달리길 진심으로 바라.




20140714-20220620


2899일째 되는 날, 너를 보내며 울면서 글을 쓴다.





운전의 세계에 입장하고 난 후 나의 내면은 한 뼘 성장했고, 그 성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게 바로 겸손이다. (p. 54)

외부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제 힘만으로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나다운 내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라고 믿는다. 나를 만드는 건 자기만의 방 안에서의 극히 개별적인 사색이니까. (p.79)

확신이 나를 구할 것이다. 확신의 결과가 언제가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확신이라는 행위에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스스로에 대한 보살핌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p.103)


날씨와 음악과 계절... 이 각자의 요소들이 매번 다른 조합으로 뭉쳐지면서 그때그때의 '운전하는 마음'이 만들어진다. (중략) 봄비 속을 운전할 때와 가을비 속을 운전할 때의 기분은 다르다. 이쯤에서 말하건대 단연코 운전은 종합예술이다. 모든 것들이 한테 어우러지고 버무려져서 순간순간 고유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운전이 주는 그 고유한 예술성을 경험할 때면 나는 세상에서 부러운 게 없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