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첫날, 다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매일 한 페이지씩 필사하며 일 년간 읽을 책에서 도토리 참나무 이야기가 나왔다.
작은 도토리 한 알에
거대한 참나무가 들어있듯
내 안에는 더 큰 내가 숨 쉬고 있다.
4:44 인증 사진을 찍고 도로 침대로 들어가 더 자기 일쑤다.
이게 무슨 새벽기상이라고. 이게 무슨 집착이고 고집이라고.
이런 내 안에 뭐 얼마나 큰 내가 들어 있겠어.
... 마음이 바짝 마른 도토리 마냥 찌그러졌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되는 걸 안다.
안 되겠다. 나가자. 걷자.
이미 해는 내 머리 위로 올라 '새벽'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많지 않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고 있었다.
새로 생긴 카페들 사진을 찍었다.
폭염 속에서도 빛나는 꽃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막 연 카페로 들어섰다.
초록색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초록색 텀블러 한가득 커피를 채웠다.
연두색 색연필과 연필도 곁에 두었다.
끼워져 있던 연둣빛 봉투에는 초록색 글씨로 '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으로만 만든 나무 그림도 함께 있었다. 20220917 날짜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나는 그날 한없이 쪼그라든 마음으로 그곳을 향했었다. 초록색 두꺼운 책 이야기를 들으며 나누며 낭독하며 덜컹이던 마음이 천천히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헤어지는 길 두 팔 가득 나를 안아주는 어느 포옹 하나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더랬다. 어느 도서관 옥상에서의 여름밤이 오래 그곳에 남아 있었다.
소설 (특히 새 책에는)은 가급적 깨끗하게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작년 8월에 붙여 놓은 초록색 연두색 인덱스가 가득하다. 작년에 와닿은 문장이 이번에도 콕 와서 박혔다.
안 되겠다. 색연필로 줄을 그었다. 연두색 배경 속 문장이 봉싯하는 듯했다.
와닿은 것까진 아니지만 표시하고픈 문장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안 되겠다. 연필로 줄을 그었다. 부드럽게 주욱 밀려가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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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기타 아오야마나 여름 별장이나 같았다. 시작해 보니 분명히 그것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작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끓이는 향내처럼, 연필을 깎는 냄새에 아직 어딘가 멍한 머리 심지가 천천히 눈을 뜬다. 사각사각하는 소리에 귀의 신경도 전원이 켜진다.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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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좌석 가운데 a에 누군가가 앉았고 나는 c에 앉았다. 곧이어 b 좌석이 채워졌다. 부스럭부스럭 덜그럭 덜그럭. 조용히 z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반경 5미터 이내 아무도 무엇도 없는 자리, 다리를 편히 세우고 집중해 읽었다. 고요히 소리 내어 몇 번을 되뇐 문장들을 가만히 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서관에 들러 8월의 그림책도 담았다. 그림책인데 어린이자료실이 아닌 종합자료실에 있었다. 부드러운 촉감의 표지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주욱 밀려가던 연필의 그어지는 맛이 좋았다. 위쪽 청록색 부분을 칼로 깎아서 나뭇결이 드러나게 하고, 거기에 아름답게 'CINDY'라고 적었다.
나는 이제 오늘 할 일을 다 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