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던 눈을 기억하다

with 자현 편집장 (책구름출판사)

by 씬디북클럽



저자 사인을 받은 책은 특별해진다.



특별해진 책을 '만든 이'의 사인도 받고 싶었다.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도 펜이 있는지 물었다. 잠깐의 주저가 무색할 만큼 힘 있고 단단힌 필체. 초록색 속지 위로 스르르 올라앉았다. 그의 손 사진을 찍었다. 불끈 존재감을 드러낸 혈관이 눈에 들어왔다. 다부진 모양새가 마음에 들어왔다.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는 편이라는 그는, 짧은 만남 속에서 나의 손에 대해 기록했다. 눈앞에 보이는 내 손을 떠올리고 보이지 않는 내 손을 상상했다고 했다. 글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마주 잡고 깍지를 끼고 어루만졌다. 손등이 간질거렸다.


지금 나는 그의 눈을 떠올리고 있다. 크고 동그랗고 쌍꺼풀이 있는 눈. 물기가 어린 눈. 처음 기억하는 그의 눈은 다른 이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찬탄과 경애가 한껏 담긴 눈빛. 보석 같은 그것을 받고 싶지 않은 이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1시간 반은 짧고도 짧았다. 귀한 시간을 내어주는 만큼 알차게 꽉 채우고 싶었다. 만나자고 할까 말까 망설이던 손은, 그를 만나러 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질문들을 적어 내렸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카톡을 나눈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데,

무엇보다 우리는 친하지 않은데.


머릿속으로는 망설이고 있었지만 써 내려가는 질문에는 거침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그리 궁금한 걸까.


'무엇보다 우리는 친하지 않은데.'

'우리는'과 '친하지' 사이에 '아직'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언젠가는 꼭 친한 사이가 되고 싶다'라고 고백하기엔 나는 이번에도 내향적이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마시던 커피를 테이크 아웃 컵에 담아 옆 공원을 걸었다. 나무와 함께 뒷모습을 찍어 주겠다며 멈춰 세웠을 때, 나는 내 뒷모습을 폰에 담고 있는 그의 눈을 상상했다. 쑥스럽고 부끄러워 얼른 뒤돌았다. 나도 폰을 들어 나를 찍는 그를 찍었다. 이 상황이 내게는 처음이 아님이 떠올랐다. 그의 여름 나무도 초록을 내뿜었다. 그때의 그는 지금 여기 그의 나이와 같았다.



저자의 사인을 담은 책은 특별해졌다.

만든 이의 사인을 담은 책은 애틋해졌다.


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니, 목소리를 담은 눈빛을 다시 떠올린다.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주저 없이 답하는 음성에는 단단함이 있었고 마주한 눈빛에는 다정함이 있었다. 녹음할 걸 그랬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7월의 녹음도 진심이었다.






* 책구름 독자로서


Q. 자연물 이름을 검색하면 이미 출판사 이름이 있다는 시절입니다. '책구름'이라는 출판사 명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염두에 두었던 다른 후보 이름들도 궁금합니다.


A. 고민 없이 지었어요. 정보 기술업계에서 서비스 사업자의 서버를 이르는 '클라우드'를 염두에 두었어요. 앞으로의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질 것을 진작에 예상했고요. 컴퓨팅 서비스 사업자의 서버를 구름 모양으로 표시하는 것에 착안해 지금 책구름 로고도 만들었어요. (실은 어떤 뜻인지 잘 몰라 만남 후 검색해서 찾은 내용을 정리했음을 밝힌다.)



Q. 책으로 돈 벌기 쉽지 않다 하지요. 출판사를 차리게 된 이유는요?


A. 제 책을 내고 싶어서요. (웃음) 국제 정치를 전공하고 일을 하는 내내 여러 형식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들에 보람을 느낍니다.



Q. 책구름 최고의 책, 또는 아픈 손가락 같은 책이 있나요?


A. 모든 책에 열정을 쏟습니다. 이화정 작가의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와 신민경 작가의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이 두 권이 현재의 책구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픈 손가락은 없습니다.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책은 만들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눈빛이 반짝였다. 멋있으면 다 언니. '언니, 멋져요!' 할 뻔 한 걸 참고 엄지 척을 내보였다.)




* 책구름에 투고하고 은 예비 작가로서


Q. 책구름에는 주로 에세이가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가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앞으로도 에세이가 많겠지만 소설 출간도 계획 중입니다.



Q. 일기 같은 내 글을 누가 궁금해할까 싶은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A.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자신감이 중요해요. 두려움이 있다는 건 아직 좀 더 써나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군요. 자신을 관통하고 치유하고 극복하는 글쓰기들로 이어져야 해요.



Q. 책구름에 투고하려면 적어도 히말라야에는 다녀와야 하나요? 아프고 힘들고 때로는 처절한 연이 있는 작가의 글을 선호하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같은 히말라야라도 리더가 되어 완등한 이야기와, 어머니를 기리며 어머니의 등산복을 입고 산에 오르는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공감할 수 있는 독자도 다르고요.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보다 남편과 함께 100대 명산을 오르며 투닥거리는 일상 이야기도 충분히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 같은걸요? (아, 이번 주말에 등산 일정 잡나요.)




* 40대를 함께 걷고 있는 강소영으로서


Q. '마흔셋 여름' 짧게 자른 헤어 스타일이 잘 울리세요. 짧은 머리를 선호하시나요?


A. 그냥 잘랐어요. 감고 나서 툭툭 털어서 말리는 걸 좋아해요. 긴 머리에 오래 신경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Q. 최근에 읽고 계신 책 제목은요?


A. 아, (한숨 잠시) J.M. 쿳시, 최근에 이 남자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제가 기회 되면 책 선물해 드릴게요.



Q. 마흔셋 여름, 바로 지금의 소확행은 무엇인가요?





헤어져야 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야만 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처 듣지 못했다. 다음 만날 때는 제일 먼저 묻고 싶다.


그와 처음 만난 식당에서 손을 마주 잡았었다.

그와 헤어지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서로를 안았다.


돌아오는 길. 7월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와이퍼 없는 차창으로 오늘의 잔상이 흘러내렸다.

다음 계절에 다른 푸르름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언젠가는 꼭.







말 통하는 사람이 없어서 가슴이 답답할 때

걱정 마 구름이 나와 함께 걷는다

위로하는 척하지만 실은 위협하는,

딱딱한 말들은 제발 그만 안녕

그런 날엔 흰 구름 하고만 길 가고 싶다.


(김선우 시, '걱정 마 구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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