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직장 상사가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단다. 스카우트 제의다. 감사한 일이다, 여보 수고했다, 연봉은 어떻게 되느냐... 의 말들보다 먼저 나온 말은,
"그럼 이제 집에서 출퇴근해?"
"그럼! 이제 주말 부부 끝이지!"
"...... 아, 그렇구나......"
그의 느낌표와 상충하는 나도 모르는 앞뒤로 따라붙은 말줄임표. 그는 서운함을 내비쳤고 나는 입술에 제대로 침을 바르고 어르고 달래고 우르르 까꿍을 했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감정이 오갔다.
아, 호시절도 다 갔구나.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남자 친구이었고 남편이고 아빠이다. 잘생겼고(보고 있나?) 다정하고 배려심 많다. 세심하고 계획성이 철저하고 깔끔하다. 연애 4년 결혼 18년 동안 한결같았다. 바로 그 이유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마냥 보고 싶고 그립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이 못 살겠고...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남편의 이동하는 직업 덕에 10여 년 간 7번의 이사를 했다. 남매를 낳고 지금 이곳 수원에 정착했다. 여러 번의 실랑이 토론 싸움 설득 애원 포기 협상을 통해 주말부부를 결정했다. 한 번은 남동쪽이었고 이번은 남서쪽이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3대가 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는 주말부부. 남편이 함께 있을 때도 거의 독박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했던 나는 매일 아침저녁 3첩 반상에 국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도 거의 주말에만 시간을 함께 하던 아이들은 매일 밤 "지금이 몇 시고. 일찍 자라"는 아침형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어느 나라를 구했는지 어떤 덕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부부는 나름 잘 맞았다. 적어도 내게는.
주말부부 5년 차, 우리는 현명한 주중과 일상을 만들어 갔다. 주중에는 자율적 새벽기상과 독서, 책, 공부, 책모임 등으로 나의 '일'을 해 나갔다. 남편은 아침 국 대신 우유에 시리얼로 간단히 해결하며 저녁 운동과 TV를 마음껏 보며 현장의 스트레스를 해결했다. 사춘기 남매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주중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 넷이 모인 밤은 그야말로 '불금'이었고, 주말 한두 끼라도 넷이 모인 저녁상은 어떤 메뉴든 맛있었다. 엄마 아빠의 손에서 벗어난 아이들 덕분에, 주말 산행이나 카페 데이트, 조금 먼 지역으로의 외출도 할 수 있었다. "아이고, 신혼이네, 신혼." 28년 지기 친구가 놀리듯 웃었지만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편이 올라오는 금요일 저녁은 좋았고 내려가는 월요일 새벽은 더 좋았다. 월요일 저녁이면 살짝 아주 조금 약간 희미하게나마 보고 싶다는 감정을 마주하곤 했다.
"브루투스... 너마저..."
로마 황제 율리아르 카이사스가 친구 브루투스 무리에게 암살당하면서 외쳤다는 한 마디는, 8월의 금요일 S중학교 3학년 4반 교실 담임 선생님에 의해 비슷하게 언급되었다.
"유니... 너마저..."
학급의 2/3 가량이 독감 코로나 기타 사유로 결석을 하던 때였다. 전날부터 목이 따끔하다던 유니는 3교시 즈음 선생님께 아프다고 얘길 했다. 여학생은 거의 전멸이었다.
전화를 받고 아이를 태우러 갔다. 간밤에 아이와 밥을 비벼 한 숟가락으로 퍼먹은 생각이 났다.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동네 병원에 갔다. 증상을 이야기하고 코로나 검사를 했다.수영 선수의 기다란 팔이 결승선을 터치하듯, 기다란 면봉이 뒤통수 끝까지 닿는 느낌이란. 이번에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