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길 아직도 하냐고? 계속해야지!"

모녀 북클럽 #6 <정혜신의 사람공부>

by 씬디북클럽



여러 이유로, 지난 설 연휴에 시댁에도 친정에도 방문하지 않았다. 각각 영상통화로 세배를 드렸다. 시댁에서의 세뱃돈은 바로 전달되었는데, 친정에서의 세뱃돈은 이여사가 직접 만나서 주시겠다고 했다. 이여사가 좋아하는 산에 같이 가면 세뱃돈을 주마하니, 아이들은 안 가고 안 받겠다고 한다. (요 녀석들 참!) 이여사는 농담이었다며, 지난번 씬디 편에 아이들 세뱃돈을 전했다.

아이들 방학 마지막 평일, 어디든 좀 데리고 나갔다 와야지 했다. 화장대 앞에 이여사에게 드리려 했던 세뱃돈 봉투(!)가 보인다. 아, 깜빡하고 있었네. 산 말고 할머니랑 다른 곳에라도 갈까? 이여사에게 전화를 했다. “애들하고 같이 화성행궁 한 바퀴 돌고 오실래요? 모시러 갈까요?” 이여사는 그러마 하고 날도 좋은데 걸어가겠다 하신다.



행궁 근처 화서문에서 만나 차로 이동했다. 아직 쌀쌀한 2월 말의 평일 오전 시간, 역시나 한산했다. 씬디는 행궁 곳곳을 배경 삼아 <옷소매 붉은 꽃동> 책 사진을 찍었다. 이여사는 모처럼 만난 외손주들과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혜경궁 홍 씨의 환갑연이 열렸던 봉수당 앞에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있었다.


“할머니, 저기가 정조, 아니 준호예요, 준호!”

“어디, 어디! 준호가 정조였지. 정말 걔는 혼을 담아서 연기를 잘하더라.”


<옷소매 붉은 꽃동> 책에 이어 드라마도 열심히 시청한 이여사에게, 정조는 더이상 그냥 정조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정조 역할을 연기한 ‘준호' 가 곧 정조였다. 아니, 준호가 정조대왕의 환생이라고 믿으실 정도인 것 같았다. 외손주들 이후에도 여러 번, 여기가 준호가 와서 앉았던 곳이라든가, 이 나무가 준호가 와서 어루만졌을 은행 나무라든가 하면서 이여사를 놀린다. 이여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손주들의 장난을 받는다.




한 바퀴 둘러보고, 일찍 문을 연 식당에서 따뜻한 수제비로 몸을 녹였다. 세뱃돈 받으셨으니 이여사가 쏘시라 했다. 다 먹고 나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준호처럼 눈웃음치며 섹시한 눈빛으르ㅡ 손을 내밀지는 못하지만, ‘It’s alright. 우리 집으로 가자' 했다. 지척의 딸 집이건만, 이여사가 방문하신 건 일 년에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늘 바쁜 이여사와 역시 바쁜 씬디. 모처럼 시간이 맞았다. 사연 많은 생크림 딸기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씬디의 퇴직 축하가 아닌, 새로운 출발을 축하라는 노래를 불러달라 했다. 케이크는 달지도 않고 부드럽게 입안에 착착 감겼다. 아이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모녀는 책 이야기를 나눈다. 아, 오늘의 선정도서는 <옷소매 붉은 꽃동> 이 아니다.



* 선정 이유


몇 개월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에요. <당신이 옳다> 라는 책을 낸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실 안에서가 아닌,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전사’로도 알려져 있어요. 이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트라우마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이여사와 세월호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어서 선정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했고요.



* 별점과 소감을 나누어 주세요


이여사 : 4.5점. 나는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지만, 유니 외할아버지가 한 번씩 뉴스 보면서, “아직도 세월호 얘기를 하고 있나”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어.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 정말,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평생 잊지 못할 일이겠니. 우리는 세월호 얘기를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해.


씬디 : 4.5 점이요. 개인적으로는 결혼기념일 즈음이라, 날짜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올해가 몇 주기인지는 잊고 살았거든요. (20140416입니다. 우리 모두 기억해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다른 시선으로 다룬 책이어서 의미 있게 읽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많이 권유한 책이기도 합니다.


* 인상적인 부분을 나누어 볼까요

이여사 : 나는 세월호 사고로 동생을 잃은 형 이야기가 마음 아프고 와닿았어. 집 밖에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그 인간들 반드시 죽인다고 중얼거렸다지. 그리고 상담 오라고 해도 당연히 안 오는 걔한테 의사(저자)가, “네가 진짜 형이다. 동생을 그렇게 잃고 멀쩡히 직장 나가고 잘 지내면 형이냐. 그리고 누구누구 죽인다고 한 그 목표 언젠가 꼭 이루길 바란다.”라고 말한 것도. 그리고 곧 상담 와서 자신이 동생한테 잘 못 해준 형이라고 울더라는 부분에서 나도 울컥했어. (그리고 이여사는 몇 해 전, 사고와 암 투병으로 자식을 먼저 보낸 지인들의 이야기를 한다. 씬디도 아는 이들이다. 함께 울컥한다.)

씬디 : p. 115 “거리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쫙 깔렸다. 오는 길에 야채를 사서 양손에 들고 오는데 더 무겁게 느껴져 발길이 더뎌졌다. 힘들어 죽겠다 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느 여학생이 존나, 씨바, 빙신새끼가 어쩌고 저쩌고, 열 받아하며 지나가는데 여학생 가방에 리본이 달랑달랑.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이 이 여학생 편에 선다. 그래, 어떤 XX 가 이쁜 너를 열 받게 했을까. 나도 우리 아들 보고픈 거 삭히느라 가슴이 열이 나 숯덩이 된단다. 휴~” 노란 리본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많은 걸 느꼈어요. 서랍 구석에 넣어두었던 노란 리본을 꺼내어 매일 들고 다니는 차 키에 달았어요.



‘나도 네 마음 알아, 다 이해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인지, 모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뿐이지, 정말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모녀 두 사람만이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일들을 얘기하며, 우리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이, 이 순간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여사가 표시한 몇 문장들로 마무리해 본다.



p. 138

우리가 가진 연민, 공감, 배려, 인간에 대한 예의로 사람을 결정적으로 구하고 도울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p.145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미적분을 푸는 재능은 필요하지 않지만 배려하고 사랑하고 돕고 서로 협력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p.149

치유의 영역에서는 모든 사람이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질문 나누기 6


이여사 : 혼이 난 기억 없어. 네 아빠랑 결혼할 때 너희 외할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어. 전라도 사람이고,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고, 본인 딸보다 학력도 부족하고 하니 마음에 안 들었겠지. 너희 외할아버지가 노발대발 역정 내시는 바람에, 너희 외할머니는 오히려 더 나를 감싸주셨어.


씬디 : 크게 막 사건은 아니지만, 한 번씩 수학 시험 점수가 좋지 않거나, 문제집을 밀리거나 많이 틀렸을 때, 자로 손바닥을 맞으며 혼난 기억이 있어요.


이여사 : 설마, 나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데?


씬디 : 아녜요. 분명히 기억해요. 혼났어요, 전 분명히 기억합니다. (세상 단호하다, 단호해.)




p.s. 다음에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은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역시 금방 읽으실 것 같네요. 82년생 아들 생각보다는, 79년생 딸을 생각하며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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