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리 딸, 사위는 이쁜 사위"
모녀 북클럽 #7 <82년생 김지영>
모녀 북클럽을 시작하고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만남 후 헤어지던 길이던가. 읽어보고 싶으신 책 있냐는 씬디의 질문에, 이여사는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셨다. 와, 우리 엄마, 세련되셨네. 그 책을 어떻게 알아? 교회에 책 많거든. 그중에 있길래. 우리 아들이 82년생이니까 제목이 눈에 보였지. 아들 생각하면서 한 번 읽어 볼까 했지 뭐. 너 이 책 벌써 읽어봤니?
82년생 아들 말고, 79년생 딸을 생각하면서 읽어주십사 하고선 책을 전해 드렸다. 그리고 곧 다시 만났다. 역시 이여사는 책 읽는 속도가 빠르다. “나야 할 일이 없어서 내내 읽다 보니 그렇지.”라고 하지만, 씬디는 안다. 이여사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이여사는 평생을 한가한 적이 없는 분이었다.
카페에 가서 우아하게 천천히 커피 마시기 힘든 시기가 다시 왔다. 이런저런 반찬을 하셨다는 이여사의 전화가 왔다. 씬디도 아이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후다닥 들고만 오겠다 했다. 현관 앞까지 고소하고 맵싸한 내음이 나를 반긴다. 아, 나는 왜 이여사 집에만 오면 배가 고파질까. 이여사는 이것저것 챙기고, 씬디는 손으로 집어 먹는다. 그 와중에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한다. 우리는 바쁠 때 더욱 쿵작이 맞는 모녀인 것 같다.
큰글자책으로 빌려다 드릴 걸 그랬다.
* 선정 이유
너무나 유명한 책입니다. 82년생에 가까운 여성들에게는 큰 공감을, 남성들에게는 반감이 있기도 한 책입니다. 66세 이여사는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해서 선정했습니다.
* 별점과 소감을 나누어 주세요.
이여사 : 3점. (그동안 이여사가 매긴 별점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이다.) 나는 솔직히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겠더라. 그냥 내 세대는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세대라서 그런 것 같아.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애 낳고 키우고, 그냥 그게 당연한 거지. 억울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
씬디 : 저는 4.5점이요. 저는 여러 번 읽었어요. 독서 모임에서 얘기도 나누고 영화도 봤어요. 남편한테도 권했지만, ‘미안하지만 나는 공감을 못 하겠다’라는 대답을 들었지요. 이 책은 그냥 읽을 때보다, 서로 얘기 나눌 때 재미도 의미도 커지는 책인 것 같아요.
* 와닿은 부분을 낭독.. 할 것 없이, 그냥 편하게 얘기 나누어 볼까요?
이여사 : 글쎄, 나는 시집살이를 안 해 봐서 그런가, 김지영의 시댁 식구들에 대한 얘기는 잘 공감이 안 되더라. 옛날부터 여자들은 애 낳고 집에서 살림하고, 남자들은 밖에서 돈 벌어 오고 그러면 온 집안이 화목하고, 나는 그냥 그런 세대인 것 같아. 김지영이 학창 시절부터 직장 시절까지 겪은 일들이, 설마 다 한 사람이 그걸 겪었을까 싶기도 해. 김지영보다는 오히려 김지영 엄마인 고미숙 여사가 나랑 좀 같은 세대겠지.
씬디 : 그렇죠, 이여사님은 고여사 님과 비슷한 세대겠네요. 저는 초반부터 크게 와닿았었어요. 부산이 시댁인 점이나, 명절 묘사하는 부분은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p.17)라는 김지영 시어머니의 말씀은, 며느리 씬디도 명절마다 듣는 말씀이기도 해요. 이여사님은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아가, 너 음식 하는 거 힘드니?” 하고 물으신다면요.
이여사 : (웃음) 글쎄, 뭐라고 하려나. 나는 시댁 있는 집이 부러웠었어. 애들 한복 입혀서 이것저것 선물 사 들고, 먼 길 고향에 가서 자고 오고, 또 명절 끝나면 먹을 거 한가득 싸 오고, 그런 다른 며느리들이 부러웠어. 미안하지만, 나는 김지영 편도 우리 딸 편도 못 들어주겠네.
역시 이여사는 깔끔하다. 팔이 안으로 조금은 굽을 만도 하건만, 이번엔 꼿꼿하시다.
씬디는 친할머니의 기억이 없다. 씬디 아빠의 생모이신 첫 번째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두 번째 할머니 역시 씬디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다. 명절에 친가에 간 기억이 없다. 큰댁에 가서 하루 자고 차례 지내고 세배하고 오곤 했다. 명절에도 할아버지를 뵌 기억은 거의 없다. 할아버지도 씬디 열한 살 때 돌아가셨다.
씬디 : 김지영의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셨어요? 저는 초중고, 아무래도 남학생들을 우선시한 선생님들 생각이 났어요. 버스 타고 학교 다니면서 크고 작은 접촉(!)들이 있었던 기억도 나고요. 지금 같으면 미투다 뭐다 해서 절대 그냥 넘어갈 일들이 아니었을 텐데, 그때는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던 것도 같아요.
이여사 : 그랬구나. 좀 그런 부분들이 있었겠지. 여자들이 목소리 크면 잘난 척한다고도 했을 거고, 아무래도 남자들 기를 살려 줘야 하고 그런 건 있었을 거야. 그래도 우리 집은 아들 딸 차별 없이 키웠다고 자부하는데. 네 아빠가 널 끔찍이 예뻐했지. 아들 낳았는데도 거들떠도 안 보고, 너만 예뻐해서 내가 좀 서운한 적도 있었어.
씬디 : 알죠. 저는 집에서는 차별받은 기억 없어요. 오히려 딸이라서, 첫째라서 대접받고 자란 기억이 많죠. 그래서 학교나 사회에, 또는 시댁에서 더 속상한 기억이 한 번씩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는 똑같이, 아니, 더 대접받았는데, 바깥세상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누나 힘드니까 신라면 끓여 줘라’ 하는 집안의 딸이었고, 남편은 ‘오빠야 힘들다. 짜파게티 끓여 줘라’ 하는 집안의 아들이었으니깐요. 그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커 온 딸과 아들이, 아내와 남편으로 만나서 이런저런 투닥거림들이 많았지요.
이여사 : 외국은 독립하면 부모도 자식도 서로 일절 터치 안 하고 각자 살잖아.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겠지. 지금도 봐라. 나도 시집간 딸 먹으라고 반찬 만들어서 싸주고 있잖니. 그냥 알아서 먹고살든지 말든지 내버려 둬야 하는데.
씬디 : 딸 먹으라고 싸주시는 거 맞아요? 이쁜 사위 먹으라고 싸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이쁜 사위는 김지영 책에 공감 못하겠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거든요.
(이여사의 폰에 씬디는 ‘우리 딸’, 사위는 ‘이쁜 사위’라고 저장되어 있다.)
이여사 : (버럭) 아니, 공감 못하는 게 어디 있어? 지금 시대가 바뀌었고, 서로 같이 이해하면서 살아야지.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힘들게 하면 엄마한테 당장 얘기해. 같이 돕고 이해하면서 살아야지, 어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이여사가, 순간 고여사가 되었다. 취직 안되면 괜히 나대지 말고, 조용히 시집이나 가라는 김지영 아버지의 얘기에, 밥상을 뒤엎을 기세로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큰 소리를 내던 고미숙 여사. “지영아, 너 나대! 막 나대!” 하며 편 들어주던 고미숙 여사의 모습이, 지금 내 앞의 이여사에게서 보인다. 눈은 정색하며 언성은 높아졌다. 그런데, 손으로는 반찬들을 담고 뚜껑을 닫고, 흐르지 않게 비닐로 다시 포장한다. 나물 반찬과 잡곡밥, 심심하게 끓인 국, 죄다 ‘이쁜 사위’를 위한 음식들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 그러나 마음은 한결같다. 씬디는 이런 이여사가 귀엽게만 느껴진다.
이여사표 반찬과 국들. 아이들은 '건전한 맛' 이 난다고 표현했다.
요새는 시댁에 와도 잠이라도 편하게 자라고 호텔 예약해주는 시어머니도 많다던데 하신다. 이여사도 아들 내외 오면 호텔 잡아주실 거예요 물으니, 그냥 자연스레 다른 얘기로 넘어가신다. 의도하신 걸까, 그냥 타이밍이 그랬던 걸까.
이여사는 시집살이를 안 해보셔서, 며느리 씬디를 끝끝내 공감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다. 이여사는 친정엄마로도 시어머니로도, 그 마음을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외손주들, 친손주들을 위해 넉넉히 나누어주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뭔가 큰 공감을 바라고 선정한 책은 아니다. 이런 얘기들을 친정엄마와 나눌 수 있는 딸이라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얘기들을 친정엄마와 나눌 수 있는 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모든 김지영씨들에게 노오란 새 봄이 함께 하길 바라본다.
<엄마를 부탁해> 질문 나누기 7
이여사 : 엄마랑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 곁에 안 계셔서 못 하네. 딸이랑 손녀 데리고 모셔 놓은 곳에 조용히 가보고 싶다. 우리 딸이 할머니한테 손 편지 한 통 써서 놓고 오면 더 좋겠네.
씬디 : 네, 꼭 그럴게요. 저는 이여사가 전에 말씀하신, 아빠 고향에 꼭 가고 싶어요. 남동생하고 우리 셋이서요. 아무도 없을 텐데 거기를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p.s. 다음에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은 신달자 작가의 에세이 <엄마와 딸>입니다. 또 금방 읽으실 듯 하군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건전한(!) 맛의 반찬들도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