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딸한테 욕하는 엄마는 아니었지?"
모녀 북클럽 #8 <엄마와 딸>
“나 내일 시간 되는데.”
혼자 등산하기, 혼등. 씬디는 혼등을 좋아한다. 아니, 싫어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모처럼 등교한 오전 시간, 혼등을 다녀왔다는 씬디와의 통화에서 이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같이 산에 가자고 안 한다. 이여사의 화법이다. 내일 시간 된다고까지만 한다. 씬디는 내일도 혼등 해야지 하는 마음을 접고 이여사에게 카톡을 보낸다.
“내일 비 안 오면 같이 산에 가요. <엄마와 딸> 책 들고 오시고요.”
“네!”
이여사는 산을 좋아한다. 40대 후반의 이여사는, 우리나라 전국의 거의 모든 산에 올랐다. 주말이면 새벽이슬 맞으며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밤이 되면 돌아와 바로 잠을 청하던 이여사의 모습을, 씬디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 주말들에 씬디는 내내 잤던가, 놀러 나갔던가. 분명히 기억하는 건, '산 같은 (‘따위’라고 했던가) 데를 뭐 하러 가지?'라고 혼잣말했던 것.
이여사는 산을 잘 탄다. 등린이 씬디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오르막에서는 나 힘들어서 얘기 안 할래요 하는 건 씬디다. 이여사는 얘기도 하고 걷기도 한다. 수십 개의 등산로, 다 거기가 거기 같건만, 이여사는 요리조리 오른다.
이여사는 잘 걷는다. 평지에서도 산에서도 걷는 속도는 씬디보다 빠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여사의 쉬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씬디는 천천히 계속 걷는데, 이여사는 짬짬이 숨을 돌린다. 쉬었다 가자고는 안 한다. 씬디보다 먼저 나가서 저 앞에 벤치에 털썩 걸터앉는다. 그 역시 이여사의 스타일이다.
주황색 모자와, 등산 점퍼, 등산 가방을 멘 이여사와 연핑크 등산 점퍼를 입은 씬디. 이여사의 아지트 아닌 아지트에 잠시 앉는다. 눈앞이 탁 트여있다. 모처럼 모녀 등산 북클럽이다.
챙겨온 책들과 주전부리들
별점과 소감을 나눠 주... 시지 말고, 엄마, 가방에 뭐 먹을 거 없어?
없는데? 난 홍삼 달인 물이랑 너 등산 방석이랑 책만 챙겼지.
원래 엄마들 가방엔 먹을 거 있는 거 아니었나? 아님 말고. 제가 챙겨 왔으니 되었습니다.
지난번 이여사의 가방에도 먹을 건 없었다. 씬디는 이번에 알아서 챙겨 왔다. 고구마 말랭이, 어제 산 빵, 그리고 커피 마시면 배 아프다는 이여사를 위해 오늘은 티백. 같이 우려먹어요, 우리.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긴 한데, 작가가 자기 딸한테 욕설을 좀 많이 하는 건 거슬리더라. ‘딸년’이라고 여러 번 나오고.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예전이나 요새나, 엄마들이 딸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집들도 있다. 씬디는 그런 단어들을 듣고 자란 기억이 없다. 친구 집에 갔는데 그 엄마가 친구에게 “This year, that year!” 하던 모습에 놀라기도 했었다. 말이 걸고 목소리가 컸던 큰어머니에게 ‘지지배’ 소리 듣고는 나한테 욕했다며, 어린 씬디는 울었었단다. 신혼 초, 재미 삼아 시댁 식구들과 친 고스톱 자리. 광 팔고 훈수 두던 시아버지의 장난스러운 한 마디에도, 며느리 씬디는 울었다 하니 이여사는 깔깔 박장대소한다.
“착해서 그렇지. 근데 요새 세상에서는 착하다는 게 꼭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더라. 누가 뭐라고 하면 입바른 소리도 하고, 센스 있게 받아치기도 해야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들에 상처받고 하면 다 자기 손해인 세상이야.”
“이여사님 외손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은 다 수원역 나가서 노는데, 우리 집만 못 가게 한다고. 좀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어쩔 땐 엄마가 자기를 ‘애지중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요. 근데 나는 그 소리를 ‘애기 둥지’라고 듣고선, ‘애기 둥지? 우리 아기새 둥지?’ 하고 같이 웃었어요.”
이여사는 또 한바탕 웃는다. 웃음 끝에 걱정한다. 씬디를 너무 순둥이로 키워서 마음이 약하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을 한다. 씬디도 걱정한다. 유니가 순둥이로 크고 있어 마음이 약하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을 한다. 하지만, 모녀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 잘 될 거야로 마무리한다. 늘 그렇다. 우리는 늘 그래 왔다.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내 마음 같지 않은 딸에게 하는 엄마들의 단골 멘트다. 이여사에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딱히 없다. 그리고 유니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도 아직은 없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 나는 이미 나 같은 딸을 낳았고 키우고 있다는 것.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는 말도 많이들 한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은 딸들의 치기 어린 멘트겠지. 씬디는 아빠의 외모를 닮아서 이여사를 닮았다는 소리는 안 듣고 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모들이 전화하면 “네 엄마랑 목소리가 똑같구나.” 했다. 어느 순간부터 유니가 “엄마, 할머니 하는 소리 똑같이 해.” 한다. 40대의 씬디는, 이여사가 거쳐간 직업들과 취미들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아마 이여사처럼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 잘 될 거야 하는 마음으로, 다리 성할 때 열심히 걸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p.61
누가 밥값을 내는가? 계산을 해 보지는 않지만 서로 비슷할 거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내가 더 많이 밥값을 내기를 원한다. 맛있는 밥도 사 주고 딸들의 마음에 위로도 되는 엄마로 있다가 떠났으면 한다.
이여사가 와닿은 부분이라며 일부러 페이지를 찾아 낭독한 부분이다. 이여사는 그런 엄마로 살다가 떠나고 싶다고 한다. 애들 데리고 수고 많다고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봉투를 건네주신 직후다. 절묘한 타이밍. 씬디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다음 달 생일 용돈 미리 받은 걸로 하겠다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하지만, 생일 선물을 주시면 더욱 기쁜 마음으로 받을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질문 나누기 8
이여사 : 너의 임신 소식과 출산에 대해, 엄마는 무덤덤하셨어. 오히려 아버지가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나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집안 일도 바깥 일도 하는 삶에 찌들어서, 자식들의 소식에 크게 기뻐하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 (이여사는 꼭 ‘엄마’ ‘아버지’라고 부른다.)
씬디 : 계류 유산 후 오래 기다린 아기,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셨어요. 딸도 좋고 아들도 좋다 하셨던 것 같아요. 출산 후 산후조리도 해주셨어요.
<엄마를 부탁해> 질문 나누기 9
이여사 : 외할머니 집이 수원 구운동인가 그랬던 것 같아. 외가에 놀러 가고 하면, 우리 엄마의 엄마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네 외증조할머니는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하고 같은 창녕 성씨인 거 아니?
씬디 : 몰랐어요. 얼른 그 책 읽을게요... 작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큰 소리로 “엄마, 가지 마!” 하시는데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언젠가, 아주 오랜 뒤의 언젠가 저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 더 슬펐습니다.
p.s. 다음에는, 지난번 등산 때 인증사진만 찍었던 책,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이야기 나누어 볼게요.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하는 모녀 북클럽 이야기, 많이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따뜻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