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저랑 책 읽으실래요?"

모녀 북클럽 #9-1 <엄마를 부탁해>

by 씬디북클럽


이여사와 책을 읽고 나눈 지 수 개월차가 되어 간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는다. 나와 같은 이여사의 생각을 듣는다. 나와 다른 이여사의 생각을 듣는다. 귀를 열고 눈을 맞춘다. 좋다. 일단 10권의 책 이야기를 완성하면 브런치북을 내야지. 그리고 이여사에게 선물해야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즈음, 어머님이 아가씨에게 읽을 책 없냐고 물으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 우리 어머님!


또 다른 생각이 닿았다. 행동으로 옮길 차례. 얘기할까 말까. 해 보자!


“어머님, 제가 미리 생신 선물로 책 한 권 보낼게요. 꼭 읽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심심치 않으실 정도로만 카톡으로 숙제 내드릴게요, 괜찮으시죠? 저희 친정엄마, 어머님, 아가씨, 저 이렇게 넷이서 카톡으로 얘기 나누어요. 제가 드리는 질문에 답변해 주시는 거예요. 어려운 질문 아녜요.”


정확히 15분 후 답이 왔다.


“겁나네요.”


오케이, 접수완료.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여사, 이여사의 딸 씬디, 김여사, 김여사의 딸 Y. 또 다른 모녀 북클럽. 단체 카톡을 만들기까지 살짝 고민했다. 내가 잘하는 일일까. 브런치 글 써보겠다고 모두를 부담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 너무 버릇없이 구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이미 질러 놓았으니 시작해 보자. 씬디에 대한 세 분의 애정과 믿음을 믿어 보자. 고민은 신중히 결정은 신속히.



수 주일 전, 이여사와 등산갔다가 미리 찍은 <엄마를 부탁해> 책 사진


책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로 정했다. 마침 이여사와 읽고 있었고, 다독가이자 정독가인 Y도 아직 읽기 전이라 했다. 아들 딸이 다 있는 김여사에게도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여사와 Y에게 책 선물을 했다. 책 사진 올리기 미션을 시작으로 네 모녀의 북클럽이 시작되었다.



책 사진을 올려주세요. 네 권의 <엄마를 부탁해>



반갑습니다. 이여사님의 딸, 김여사님의 며느리, Y님 오빠의 아내인 씬디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로 함께 얘기 나누려고 해요. 아들과 딸, 남편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로,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을 골랐습니다.

책을 꼭 완독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오늘부터 하루에 한가지씩 숙제(!)를 드릴게요.

책을 읽지 않아도 대답하실 수 있는 질문들도 5개 정도 천천히 내드릴게요. 부담없이 답해주시면 됩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하나씩 질문 드릴게요. 생각해보시고 천천히 답해주시면 됩니다. 5개 질문 준비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입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어린 시절 고향 집에서의 기억을 나누어 주세요.


김여사 : 저는 1951년,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16살에 시집오셔서 22살에 절 낳으셨지요. 집은 크고 당시에 아버지가 친구분과의 동업으로 금광산을하고 계셔서 집이 상당히 크고 풍족했기에 할머니의 시집살이가 고되었다고 해요. 애 못낳는다고 6.25 전쟁 통에도 별 어려움 없이 넘기고 했는데, 제가 몸이 약하고 잘 안 먹어서 출생 신고가 3년이 늦게 되었어요. 살아가며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하네요. 초등학교 시절에, 늘 앞에 서고 달리기는 꼴찌는 맡아서, 운동회 때 달리기가 싫었어요. 슬그머니 화장실 간 것도 몇 번 되어요. 6학년 때인가, 뛰어가서 주운 종이에 적힌 대로 하는 ‘운명 경기’가 기억나요. ‘면장님하고 달리기’를 뽑았고, 면장님이 절 거의 안고 달려서 처음으로 일 등한 기억이 나요. 약삭빠르거나 재빠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여사 : 제 고향은 충남 당진군 송악면 정곡리 130번지예요. 큰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집, 작은 아버지 이렇게 네 집이 같은 번지에 살았어요. 모두 22명이니 정말 대가족이었지요. 초등 학교때부터의 기억이죠. 4킬로나 되는 학교길, 비만 조금 와도 도랑을 건너지 못해 결석은 다반사였구요. 하굣길에 남자애들이 뱀을 길에 쭈욱 늘어놓아서 무서워 울기도 많이 했죠. 늘 웃음꽃이 피는 작은 산골, 등잔불 밑에서, 부모님 애창곡인 두만강, 황성옛터를 부르며 화목하게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Y : 제 고향은 부산 대연동입니다. 하지만 그곳의 기억은 별로 없네요. 최초 기억은 부산 온천장으로 국민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여러 집들이 하나의 마당을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으로 기억해요. 집과 마을 곳곳이 모두 놀이터로, 놀기 바쁜 매일매일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웃에 할머니가 사셨는데, 이불에 오줌을 싸고 소금을 얻으러 간 저에게 제 키 만한 주걱을 휘두르며 엉덩이를 때려주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어디서 생긴 괴력인지 주걱을 빼앗아 할머니네 방으로 집어던지고, 머리에 쓰고 있던 바구니도 집어던지며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더랬어요. 조그만 게 패악을 부리는 것을 보고 할머니가 웃으셨던가? 아닌가? 가물가물합니다.


씬디 : 저의 고향은 인천시 부평동입니다. 주택가 2층에서, 거실을 가운데에 둔 세 개의 방에서, 세 가구가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각 집마다 또래 아이들이 있었어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먹을 것도 나눠 먹고, 아이들도 같이 키우며 살았을 것 같아요. 개별화장실도 없었고, 석유곤로에 밥해 먹었을 시절이,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드네요. 다만 같이 어울려 찍은 사진들로 제 어린 시절을 추억해봅니다. (실은 제가 기억을 하는 건지, 사진이나 엄마의 얘기들로 그렇게 기억이 만들어진 건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두번째 질문입니다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형제간의 우애는 돈독하셨나요?


김여사 : 제가 장녀입니다. 4살 차이 나는 남동생, 여동생 둘, 막내 남동생으로 다섯 남매예요. 첫 남동생 태어났을 때 고추밭에 터 팔았다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어요. 동생이 숙제 안하고 만화책 봤다고, 선하시던 아버지가 동생을 기둥에 묶어놓아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둘째 여동생은 너무 순하고 손재주도 좋아서 ‘순딕이’로 불리웠어요. 셋째 여동생은 좀 억세고 남자 기질이 많아서, 딱지치기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했어요. 굉장히 활동적이어서 언니나 동생이 딱지를 잃거나, 싸워서 맞고 오면, 복수전을 벌이곤 했어요. 막내 동생은 잘 생기고 총명했는데, 10살 때 냇가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지요. 형제 간의 우애는 어린 시절에는 화합이 되었던 것 같아요. 큰 남동생은 사업하다가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저 세상 갔고, 막내 남동생도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다 수 년 전에 심정지로 저 세상 갔어요. 큰 여동생은 거창에, 작은 여동생은 시흥에 살아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머니 제삿날 모여서 지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이여사 : 저는 언니, 오빠, 나, 여동생, 남동생, 모두 5남매예요. 언니는 6~70년 대 어려웠던 시절, 맏이라 희생하느라 학교를 다 못 다녔어요. 최근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행복한 만학도가 되었지요. 오빠는 머리가 총명하고 아버지의 교육으로, 중학교 수석합격 및 대학원까지 장학금으로 다녔어요.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노후를 보내고 있어요.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까지 나와 집안의 자랑이었어요. 대통령 표창장은 아버지의 보물이었어요. 여동생은 나와 유일하게 다투면서 자란 형제예요. 동생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밤새도록 책을 보고 집안일은 물론, 자신의 운동화와 교복도 빨지 않아 내가 엄청 화를 내고 다퉈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전라도 광주에서 유아 숲 해설사로, 고려인 마을에서 일하고 있어요. TV에도 출연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막내 동생은 인천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엄마 생전에 그 유치원에서 생신잔치도 했었어요. 지난 3월 초, 엄마 1주기를 맞아, 오남매가 함께 모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잘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답니다.


Y : 저는 위로 오빠가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요. ㅎㅎ)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같이 잘 놀았던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제가 샘이 많아서 오빠 약 먹는 것도 뺏어 먹으려고 했었다네요. 오빠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노는 시간이 별로 없어지고 쭉 데면데면하게 지냈어요. 그럼에도 시골에서 살 때 먼 학교까지 오빠의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던 정겨운 기억도 납니다. 아들을 귀하게 여기는 가풍으로 차별받으며 자랐다는 나름 억울한 마음이 컸었는데 그래도 하나뿐인 오빠라고 입대하는 뒷모습을 보며 전봇대 뒤에 숨어서 눈물, 콧물이 쏙 빠지게 울었었어요. 오빠가 결혼을 하면서, 소 닭 보는 듯한 관계가 반전된 것 같습니다. 둘이서 따로 대화도 거의 안 했었는데 이제는 전화 통화도 하니 큰 발전이죠. 오빠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바른 사람이예요. 저는 한참 모자라는 동생이라,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씬디 : 저는 세 살 터울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이 갓 태어났을 때부터 샘 한번 내지 않은 사이좋은 남매였어요. 자라면서도 여러 가지 추억들을 함께 나누었어요. 제가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하기도 했고, 엄마가 시장 가신 동안 낮잠 자던 동생이 깨면, 엄마 대신 달래준 적도 있어요. 가까이 지낸 사촌 집에 동생만 자고 온다고 따라가면, 도로 데려오자고 울기도 했대요. 싸우며 자란 기억은 전혀 없어요. 사춘기 때인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몸싸움을 한번 했는데, 아 이제 얘한테 힘으로 안 되겠구나, 실감한 후로는 다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성별이 다르다 보니 공감대가 달라지고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죠. 군 입대 후 면회 다녀오는 길에 울컥했던 기억도 나네요. 저는 남녀 차별 없이 자랐어요. 오히려 남동생보다 사랑도 대우도 많이 받았어요. 누나한테 양보도 많이 하고 라면도 끓여다 주고 한 착한 동생이예요.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한 번씩 자기만의 고집도 있고, 어느새 가정을 꾸리고,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 음식은 무엇인가요? 엄마표 음식을 자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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