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것을 친정엄마에게 함께 하자 손 내민 지 수개월이 되었다. 같은 책으로 다른 생각을 나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두 귀를 열고 두 눈을 맞춘다.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가족 지인 자식 사회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한다. 44세 딸과 66세 엄마의 책 수다 시간은 언제나 짧게만 느껴진다.
시어머님이 큰 수술을 받으신 후 집에 계시는 중이었다. 아가씨에게 읽을 책 없냐고 물으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한참 망설이다 어머님께도 손을 내밀었다.
“어머님, 제가 책 한 권 보낼게요. 저랑 같이 책 읽어요.”
약 15분 후 답이 왔다. “겁나네요.”
함께 읽을 책으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골랐다. 엄마와 읽고 있었고, 다독가이자 정독가인 아가씨도 읽기 전이라고 했다.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누이, 그리고 나,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네 여자 모였다. 책 표지 사진을 찍어 인증했다. 네 모녀의‘모녀 북클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여사님의 딸, 김여사 님의 며느리, Y님 오빠의 아내인 강소영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책은 다 읽지 않으셔도 돼요. 안 읽어도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준비했어요. 편안히 생각해 보시고 천천히 답해주세요.”
책은 소설가인 큰딸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엄마를 찾는 아들딸과 남편의 모습, 그리고 엄마 박 소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딸이라면 엄마라면, 그리고 여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가족을 위해 일평생 희생해 온 엄마의 모습에 눈물짓기도 오열하기도 했다. 남도의 사투리가 읽는 맛을 더했다.
어린 시절 고향 집 기억과 형제자매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했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충남 당진군 송악면 정곡리, 부산 대연동, 인천 부평동... 네 모녀의 나고 자란 고향은 모두 달랐다. 엄마와 어머님의 형제 관계가 두 분 모두 5남매라는 걸 알고는 서로 반가워들 하셨다. 시골 마을 다복하고 단란한 대가족 속에서 먼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고 형제자매들과 투닥이는 두 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동네 운동회에서 면장님 손을 잡고 달리는 달리기 꼴찌 여학생이었던 어머님의 이야기에는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오줌싸개 아가씨가 동네에 소금을 받으러 가는 모습에서는 소리 내어 웃었다. 오빠(나의 남편)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타고 학교 가는 모습도 눈앞에 그려졌다.
엄마의 고향 이야기에서는 외할아버지가 부르시는 ‘황성옛터’ 가락이 들리는 듯했다. 혈육을 먼저 보낸 안타까움과 슬픔이 카톡방의 글씨에 가득 묻어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형제자매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였다. 세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별일 없냐고 무심한 척 안부 문자를 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표 음식을 자랑해 주세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끓여주시던 김치 국밥... 멸치 몇 마리 넣고, 김장 김치 송송 썰어 넣고, 감자도 숭숭 썰어 넣고, 쌀이나 수제비 반죽 떠 넣어 걸쭉하게 끓인 김치 국밥! 지금은 그 맛이 안 나. 봄쑥을 캐어 밀가루 뉴슈가 뿌려 만든 쑥 털털이도 맛있었어. 콩이나 옥수수를 얹은 탁주로 만든 빵 생각도 나.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귀찮았을까 싶네.”
“식재료가 귀하던 시절, 정성으로 해 주셨던 음식 모두 맛있었지. 여름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감자 호박 넣어 끓인 칼국수. 그 맛 못 잊어. 사골을 푹 고아서 끓여 주셨던 설날의 떡국. 지금의 나는, 사골 끓이는 게 귀찮고 번거로워 시중에 파는 제품을 사 먹네. 그 시절 그 정성 헤아리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엄마표 음식은 뭐든 최고지만 딱 하나만 꼽는다면 잡채입니다. 엄마의 잡채는 뭐랄까... 그날의 기분으로 간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기분 좋은 날의 잡채, 화나는 날의 잡채, 귀찮은 날의 잡채, 모두 다르게 느껴져요. 명절에 뭐가 먹고 싶냐 물으면 지금도 ‘잡채!’라고 답해요. 맛도 맛이지만,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궁금증도 더해집니다.”
“엄마표 김치찌개를 좋아해요. 고기를 잔뜩 넣는 것도, 다른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냄새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여요. 축 늘어진 김치를 건져 먹고, 국물에 밥 비벼 먹고, 끄트머리만 남아도 절대 안 버리고 아껴서 다 먹게 되어요. 싱거운 듯 심심한 엄마표 나물 반찬도 좋아요. 어렸을 때는 싫었는데 점점 그런 음식들이 좋아지네요. 저도 나이 들어가는 걸까요.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은 선물 이야기도 나누었다.
온천에 모시고 가 고생하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드리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맛난 음식을 나누고 많이 웃게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노년에 교회 가기를 즐기셨던 엄마에게 성경책을 선물하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이자 어머니인 두 따님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한스러움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두 딸은 시간과 마음을 내어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돈이든 선물이든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든, 엄마가 기뻐하실 수 있도록 지금 잘하고 싶다고, 아니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질문은‘지금 내 앞에 엄마가 계신다면 건네고 싶은 말’이었다. 네 딸의 대답은 다른 듯 같았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건강하시라고 행복하시라고 손을 마주 잡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저도 엄마처럼 살겠다고,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겠다고, 꼬옥 안고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질문들에 답을 해나가는 동안, 친정 시댁 시누이 새언니의 구분은 흐릿해져 갔다. 우리는 엄마의 딸이었고 딸의 엄마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문장으로 같은 마음을 나누었다.
신경숙 작가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폭염을 앞둔 7월의 선선한 저녁, 한옥 서점의 잔디밭이었다. 엄마도 함께였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한 이야기 후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잠시 망설이다 손을 들었다.‘엄마를 부탁해’ 책으로 나눈 모녀 북클럽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써 주심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 모녀가 함께 읽을 책 추천을 부탁드렸다.
행사 후 책에 사인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니, 너무 보기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 시간 나누시길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엄마는 책을 쓴 작가를 만나는 게 처음이라며 살며시 웃으셨다. 어머님과 아가씨에게 선물할 책에 사인을 받았다. 나란히 마주 서 사진도 찍었다.
어머님은 다행히 몸이 많이 좋아지셨다. 식단 및 건강 관리를 하고 계속 약을 복용하신다. 서울로 오던 외래 진료는 이제 내년에 와도 좋다고 했단다. 애들은 잘 있나, 단디 챙기라 말씀 중에 안부 전화 중에도 함께 나누었던 책 이야기를 한 번씩 하신다. 사부인과 딸과 며느리와 나눈 시간이 좋았다고 하신다.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와는 각자의 상황과 일상에 치여 자주 만나지도 함께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있다. 가끔 요새 읽을만한 책 없냐 물으신다. 북토크 행사가 또 있으면 알려달라 하신다. 사부인과 사돈처녀는 어쩜 그리 글을 잘 쓰냐고 한 번씩 이야기하신다.
오픈 카톡방은 여전히 열려 있다. 자주 만나거나 직접 밥 한 끼 먹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이따금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책을 통해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그 안온한 시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