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명문고
"올, 아들 그 고등학교 입학했구나! 축하해! 갈 길이 고되고 힘들겠지만 잘할 거야. 너도 수고하고."
"고맙습니다."
동생의 카톡 사진에서 발견한 P고등학교 전경 사진. 예비 고1 조카의 합격 소식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러웠습니다. 나름 명문 고등학교 출신의 저로서는 말이죠.
나고 자란 도시 인천에서 초중고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날고 기던 저는 이 도시의 모든 날고 기는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외고를 경쟁 상대로 정해 서울대 연고대 합격자 수를 늘려가며 명성을 높여가는 중이었지요. 제가 입학할 즈음에는 '서울대 75명 합격' 플래카드가 교문 앞에 떡 하니 붙어 있었고요. (지금도 인천 출신 제 또래 중년들은 "아, 그 학교!"하고 알 정도입니다.)
고입고사 200점 만점에 190점을 넘지 못한 학생은 전교생 600여 명 가운데 두어 명에 불과했습니다. 역대급 신입생들의 입학에 학교에서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모두는 입학과 동시에 수험생 모드가 되었습니다. 3월 입학 전 겨울방학부터 학교에서 선행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통학거리는 핑계가 댈 수 없었습니다. 명문고에 입학했으니 명문대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저도요.
엎드려 자다가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농구를 하고 늦게 들어와 혼나던 남학생들의 성적은 늘 앞쪽에 자리했습니다. 화장을 짙게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던 여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은 늘 나보다 좋았습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나만의 무기라고 생각하던 제게 한계와 좌절을 경험하게 한 삼 년이었습니다.
명문고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아닙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 건 아니었을까, 이제 와 얕은 후회가 있는 정도입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이들이 모여 학습 의욕을 고취하고 동기 유발하며 좋은 시너지 효과를 얻는 긍정적 영향도 당연히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만큼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을까, 이제 와 현실을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입시 정보가 오가고, 타 지역 외고 성적과 늘 비교되었습니다. 분명 같이 놀았건만 성적은 나보다 월등히 좋은 영재 수재들과 함께 마주하는 것은 괴로웠습니다.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은 그 어떤 존재감을 발현하기 힘든 점은 자괴감을 주었습니다. 희망 대학은 해마다 점점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인서울 대학을 지망하고 싶었던 저는, 초중고에 이어 대학도 인천에서 진학했습니다. 물론 좋은 학교입니다만,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진학한 대학을 교사들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었더라면...' 하는 과거완료형 문장이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엄마, 나 왜 그 학교 보냈어? 누구한테 추천받았어?"
"몰라, 기억도 안 나는데."
순전히 엄마가 원해서 입학한 고등학교였다고 생각해 왔는데. 맙소사, 막상 엄마는 기억도 못하고 계시더라고요. 조금은 허탈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선택과 결정의 중심에 저도 있었는걸요.
고교 입학 통지를 받고 벌써 명문대 입학을 한 듯한 설렘에 마음이 둥둥 떠올랐었지요. 내 머리면 이 정도만 해도 괜찮겠지 방심했었지요. 둥둥 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머리를 믿지 말고 좀 더 깊이 좀 더 오래 공부했다면 어땠을까요. 어이쿠, 과거완료형 문장이 아직 안 끝났나요.
일반고든 명문대든 외고든 아니든, 이왕 입학했다면 참 몹시 열심히 열렬히 후회 남지 않게 열심히 하길 응원합니다. 되는 건 좀 더 파고들고, 안 되는 건 인정하는 법도 배워가길 바랍니다. 쭈구리로 움츠려 들어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감 없는 학생으로 남지 않길 빕니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지금의 나에 집중하길 마음 담아 성원을 보냅니다...
...라고 하면서도 정작 예비 고3 내 아이에게는 그와 같은 응원과 성원을 보내고 있는지 또 반성하게 됩니다.
고삼 엄마의 고상 일기는커녕, 매번 반성과 후회만 가득하니, 휴우, 어쩌면 좋을까요.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