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안과 위안
"엄마, 나 너무 불안해. 종교라도 가져야 할까? 교회는 수원 할머니가 다니시고, 절에는 부산 할머니가 다니시고, 나는 이슬람교라도 해야 하나?"
아침 10시, 차 안에서의 짧은 대화가 온종일 마음속에서 삐걱댑니다. 나만의 기도, 도시락 싸기는 열심히 하고 있건만 그게 다가 아니겠지요. 지금도 안고 잠드는 낡아빠진 반려 곰인형도, 가방에 주렁주렁 달린 키링도, 보이지 않는 온 가족의 응원의 마음도, 어떻게 아이의 불안을 덜어 줄 수 있을까요.
상상만 해도 너무 긴장됩니다.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11월의 그날만 생각하면, 저는 너무 떨리고 무섭기까지 한데, 본인은 오죽할까요.(시험 치러 들어가는 아이 앞에서 괜스레 엄마가 눈물 바람일까 봐, 그날은 남편이 배웅하기로 진작에 계획해 둡니다.)
저의 고3에는 '100일 반지'라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사귀는 사이의 100일이 아닌, 수능 100일을 앞둔 즈음에, 금으로 된 반지를 손에 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일이었지요. 밸런타인 데이의 초콜릿처럼, 언제 어디서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유행에 기대어, 많은 고3들이, 특히 여학생들이 14k 실반지와 함께였습니다.
저도 부모님께 반지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초경에 아빠의 장미 한 송이 선물처럼, (실은 실제였는지 나의 바람이 만들어낸 상상인지 지금도 헷갈립니다.) 고3 수험생으로서 당당히 요구한 금붙이였습니다. 얇디얇은 반지 속에 좋은 기운과 에너지가 채워지길, 종교 없는 수험생의 비빌 언덕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가사 과목의 여교사였습니다. 담임도 아니면서 수업 시작 전 늘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남녀 공학의 합반이었던 우리는 가사, 교련 과목에는 남학생 여학생 나누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여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귀를 뚫었는지와 염색 유무, 교복 치마 길이를 확인했습니다.
손 검사도 있었습니다. 열손가락을 쫙 펴서 손톱 위생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매니큐어를 했거나 손톱이 지저분하면 투명한 30cm 자로 손등을 찰싹 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고3 교실에서 갑작스러운 100일 반지 검사를 했습니다. 미처 반지를 숨기지 못한 여학생들은 반지를 뺏겼습니다. 반지를 끼는 것은 학생답지 못하다, 졸업할 때 찾으러 와라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교무실에 심부름 갔다가 그 교사의 책상 서랍 속 수북하게 쌓인 수십 개의 반지를 보았다는 목격담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 목격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자녀의 행운과 안심을 위해 엄마 아빠가 사 준 물건을, 무슨 자격으로 압수하나요. 시험을 위한 반지인데 시험 때까지 착용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억지인가요. 정말로 졸업할 때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반지마다 학년반이름을 기재해 보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후 반지를 돌려받았다는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시절이었습니다.
아이가 불안을 호소하던 그날, 마침 가까운 곳에서 유명 강사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한능검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이자, 이제는 연예인이 다 된 분이었지요. "저희 아이가 선생님 강의로 6학년 때 한능검 1급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한국사는 무리 없이 해 왔습니다. 고3이 되는 아이에게 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큰 응원이 될 겁니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 한능검 교재를 챙기고도 내향형 엄마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연습한 대사를 전하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우연히 들른 서점의 굿즈 코너에서 작은 부적 같은 금붙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이의 띠인 쥐 모양을 골라 들었습니다. 쥐는 '다산, 풍요, 예지'를 상징한다네요. 금액을 지불하고 서둘러 오후 일과를 보냈습니다.
"우와, 이게 뭐야? 다산이래 다산. ㅋㅋ"
"다 계산해 내서 좋은 점수들을 많이 낳으면 되지 뭐. 마음에 들어?"
"응, 귀엽네."
저녁 10시, 차 안에 숨겨 놓았던 작은 쥐띠 부적(!)을 아이가 발견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유튜브에서 반야심경을 찾아들었다는 아이의 말에 풋 하고 웃었습니다.
함께 낄낄대는 끝에도 불안과 걱정이 묻어납니다. 긴장도 연습하길, 불안도 익숙해지길, 그 속에서도 집중해 나만의 정답과 해답을 잘 찾아내길, 고3 엄마의 바람이 굿즈 뒷면 위로 적혀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항상 보호받으시고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