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사는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질문을 던지셨다. 씬디의 어설픈 대답을 듣고는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지난번 만났던 행궁 책방에서 고른 이번 책. 60대 엄마와 40대 딸이 페미니즘 책을 읽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역시) 읽을 책이 많다는 핑계로, 씬디는 이번에도 호로록 읽었다. 반면에, 이여사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면서 여러 번 정독을 해 오셨다. 행궁 근처의 도서관 옆 한적한 한옥 카페에 자리 잡았다.
“두 분 보기 좋아요.” 카페 사장님의 한 마디.
“우리 딸이랑 책 읽는 거예요.
하도 읽자고 해서 눈도 침침한데 읽는 거예요.
지난번에는 손녀딸까지 셋이서 같이 행궁에 왔었어요.”
세 문장으로 대답하는 이여사. 사장님의 한 마디가 질문이었었나?
* 책 선정 이유
수원시 인계동에는 나혜석 거리가 있어요. 행궁에는 나혜석 생가터가 있고요. 수원 출신 여류 문인이자 화가인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도통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가볍지 않은 단어를 내려놓고, 같은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 별점과 소감을 나누어 주세요
이여사 : 나는 4점. 지금까지 살아있었더라면, 뭔가 큰 존재감이 있는 여성이었을 것 같았어. 너무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시대를 잘못 타고났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너는 점수를 매기라고 하는 거니? 어려워 죽겠는데.
씬디 : 그냥 내키는 대로 하시면 되죠, 뭐. 저도 4점이요. ‘이혼 고백장’이나, ‘모(母)된 감상기’ 등은 제목만 들어보고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와, 대박이네요. ‘82년생 김지영’ 못지않는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들이 놀라웠어요. (‘82년생 김지영’ 도 곧 모녀 북클럽에서 함께 얘기 나눌 예정입니다.)
* 와닿은 부분을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이여사님의 생각을 나누어 주세요.
p.36... 지금 세상에는 여자도 남자와 같이 많이 가르쳐야 할 것을 알았다.
남자 형제들은 대학까지 나오고, 여자 형제들은 다 못 나왔지만,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되지. 아들 딸 차별 말고 다 가르쳐야지. 이 여자 아무리 봐도 정말 ‘난’ 여자였다, 이 여자.
p.197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속 마디를 지은 운명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쇠사슬 이외다. (‘이혼 고백장’ 중)
운명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거기에 얽매여서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혼했다고 끝인가, 다 자기 할 나름이지. 아무리 바닥까지 내려가도, 스스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거야.
p.257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라고 정의를 발명하여 재삼 숙고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모된 감상기’ 중)
나는 이 말이 막 이상하게 들리지 않더라. 그렇지, 엄마의 피와 살을 다 떼어가는 게 자식이지. 근데 이쁜 악마지. 기꺼이 내 살점을 떼어주고 싶은 악마.
이여사는, 지난번 책 <버림받은 왕자 사도>와 <역적의 아들 정조>를 읽고 나니 최근에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이 더 재밌더라 하신다. 씬디는, 오늘 책 읽고 나면 마침 내일 방송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더 재미있으실 거예요라고 얘기한다.
나혜석 생가터를 함께 걷는다. 나혜석의 책을 함께 읽는다. 나혜석에 대해서, 그리고 여자로서의 모녀의 얘기를 함께 나눈다. 이런저런 근황과 가족들 얘기 수다를 떤다. 두서없이 왔다 갔다 한다. 아까 했던 얘기를 또 한다. 둘이서만 알고 있고 나눌 수 있는 옛날이야기들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12월의 칼바람 끝에, 마음속에선 벌써 3월의 봄바람이 불어온다.
<엄마를 부탁해> 질문 나누기 3
이여사 : 너희 할머니 (홍여사님, 2021년 2월 작고)가 우리 집에 와 계실 때, 교회 집사님이 놀러 오신 적 있었어. 나는 잠시 나갔었고. 그런데 그 집사님 하고 얘기 나누다가, 너희 큰 외삼촌 얘기를 했다는 거야. 큰아들은 본인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큰아들 젖 먹일 적에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아팠는데, 그것도 다 기쁘게 참아낼 수 있었다고. 그런 얘기는 딸인 나도 몰랐었는데, 그렇게 모르는 사람한테도 얘기하실 정도로 큰아들 끔찍하신 줄 몰랐네. 돌아가시기 전에도 큰아들 그렇게 찾으셨었지.
씬디 :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가 되면 엄마를 더 잘 알 것 같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 엄마는 스타일 상, “괜찮다” 하시면 정말 괜찮으신 분이었는데, 괜찮으신 건지 아닌지 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아직 좀 더 살아봐야 엄마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려운 분이십니다, 이여사님.
p.s. 다음에 만나 함께 얘기 나눌 책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입니다. 읽으시면서 밑줄도 치고 플래그도 붙이고 메모도 하시고, 마음껏 하세요. 오늘도 즐겁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