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면접이었다.
브런치 작가 승인 1년이 된 요즘, 가장 공을 들여 쓴 글은 출판사에 투고할 글도, 브런치에 올릴 글도 아니었다. 바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였다.
이력서 칸을 채우느라 20년도 넘은 기록들을 끄집어냈다. 기억들도 함께 딸려 나왔다. 한 학기 휴학 후 코스모스 졸업식 날, 온 가족과 친구들 다 모여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부들부들 긴장 백배 제일 어려웠던 평행 주차를 완료하고 운전 면허증을 땄다. 첫째를 임신한 몸으로 대학 평생 교육원 영어지도사 자격증으로 태교를 했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밤을 새워 가며 과제 준비와 발표를 했고 테솔 졸업식 날,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영어 강사로, 아이를 낳은 후에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한 경력들을 채워 넣었다. 채우고 채워도 칸이 남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자기소개서, 일명 자소서 양식은 참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원하는 곳의 별도 양식이 있어서 그대로 채워나가면 되겠지, 솔직히 쉽게 생각했다. 성장 과정과 가치관, 근무 상황 중 문제 발생 시 대처 방안, 자기 계발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일들, 성취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쓰면서도 이게 말이야 방귀야 싶었다.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고 수정과 편집을 반복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현자타임이 오던 막바지에는 국내 20위 권 건설회사에 간부로 근무 중인 최측근(!)의 도움을 받았다. 평소에 자주 쓰지 않았던 '귀사의' 이라든가, '자양분', '피력하는' 하는 단어들을 이용해 채울 수 있었다.
2월의 오후 면접 일정이 잡혔다. 집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가 편한 마음으로 향했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 대기하는 동안, 연분홍빛 코트를 입은, 누가 봐도 나와 열댓 살 이상은 차이가 나는 또 다른 지원자가 들어섰다. 마스크 속으로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목조목 지원 동기와 포부를 말하는 그가 참 예뻤다. 깔끔한 자기 소개와 답변들은 준비를 많이 한 티가 팍팍 났다. 푸르른 젊음이 눈부셨다. '싱그럽다'는 단어가 자연스레 솟아올랐다. 나와 같은 업무 지원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남매를 낳고 제 손으로 키웠습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력을 쌓아 온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귀를 열어 경청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힘이 났지만 아이들 때문이 많이 힘이 들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띄지 않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다. 사회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라도 하고 난 오후에는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나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이면 이유가 분명한 눈물이 솟구치곤 했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은 아물어 딱지가 앉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었다. 면접 질문들에 대답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10년 전보다 단단하게 여물어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연분홍 지원자와 함께 나오며 인사를 나누었다.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담아 헤어졌다. 스물아홉이라는 그는 뒷모습도 참 예뻤다. 그가 바라보는 마흔넷의 나는 아름다운 모습이길, 감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둘 다 비슷한 색깔의 단발 머리 모양이었다.
잠시 들른 스타벅스에도 분홍빛이 가득했다.
내가 첫 번째로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벌써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