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最苦)의 약

인생은 쓰고 약은 더 쓰다

by 씬디북클럽


첫 번째 약이 도착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은 한 달에 한두 번 할까 정도였다. 없는 살림에도 남매가 하고픈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은 참 열심히도 사셨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가장 비싼 음식은 바로 한약이었다.


고3이 되면 크고 작은 징크스들이 생겨난다. 어떻게든 좋은 대학 목표한 대학에 가기 위해서 보내기 위해서의 이유다. 나는 조르고 졸라 수능 100일 금반지를 손에 끼웠다. 엄마는 고르고 골라 고3 전용한약을 주문했다. 이를테면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일명 '총명탕' 종류였을 것이다.


새벽 6시 40분에 집을 나서 밤 12시 반이 넘어 귀가하는 스케줄 3년 차의 마지막 1년 중반 정도였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신 관리는 처음 마주 한 인생 최대 스트레스였다. 까칠함과 예민함과 제대로 짜증이 절정이었다.


아침밥도 잘 먹지 않는 내게 내미는 따뜻하게 데운 한약 한 팩은 절대 단 한 모금도 입에 넣고 싶지 않은 액체였다. 안 먹겠다고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리며 집을 나서곤 했다. 그저 약이 써서 싫었는지 그 약을 먹고 나서 이루어내야 할 성적의 부담이 싫었는지, 암튼 그저 싫은 기억이다.


던져 놓은 약에 세 살 터울 남동생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비싸게 돈 주고 산 건데 버릴 순 없고 누나 안 먹으면 나라도 먹어야겠다던 동생이었다. 냉장고에 보관된 수십 개의 팩이 슬금슬금 줄어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마신 부채표 까스활명수나 쌍화탕 빈 병을 탈탈 털어 한두 방울에 입맛을 다시곤 하던 녀석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동생은 그 해 키도 쑥쑥 성적도 쑥쑥 올랐다.





두 번째 약이 도착했다.


신혼 생활을 즐겨야지 하면서 1년 정도는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딩크족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제 슬슬 아이를 가져볼까 생각한 딱 그 시점에 기적처럼 임신이 되었다. 남들 다 하는 입덧도 전혀 없었다. 2주 후에 오라고 한 그 말이 왜 아무렇지 않았건지. 7주 차에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튼튼이, 10주 차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를 들려주지도 움직임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계류유산'이었다. 그날 오후 바로 아이의 흔적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내 몸 안의 모든 눈물도 남김없이 흘려보냈었다.


며칠 후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아이 잘 들어서는 약이라 했다. TV에서 아기가 나오면 마냥 눈물이 나왔고 지인의 돌잔치 초대에는 축하금만 보내던 시절이었다.


흑염소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헛구역질이 났다. 걱정과 배려를 생각해서라도 먹어야지 했다. 한 팩을 열고 냄새가 올라오자마자 실제로 구역질이 났다. 꾹 참고 먹었다. 토악질이 났다. 약은 잘 받냐 신경 써서 지은 건데 잘 먹고 얼른 다시 아기 가져야지 않겠냐. 평소보다 더 자주 확인 전화가 왔다. 네 잘 먹고 있어요 하며 개수대에 흘려보냈다. 남들 다 하는 임신 하나 쉽게 못 하는 자괴감도 따라 흘러내렸다.




세 번째 약이 도착했다.


날씬하고 얼굴이 하얗고 예쁘기만 한 딸아이, 누군가의 눈에는 예쁘지만 삐쩍 말라 약해 보이고 얼굴은 허옇게 보이기도 한다. 젖도 이유식도 밥도 꿀꺽꿀꺽 먹지 않았던 아이는, 여전히 입이 짧고 양이 많지 않다.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으로 딱 적당량만 먹는 우리 집 미슐랭이기도 하다.


아이 몫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커다란 박스에 아이스팩을 넣어 빈틈없이 꾹꾹 채운 정확히 134팩이었다. 참붕어와 장어를 푹 고아서 고소하니 먹을 만하단다.

인체에 주는 효능을 눈으로 읽어본다... 붕어는 허약 체질의 보양제로 알려져 있으며... 허약체질로 인해 어지럼증이 있거나 정력이 약할 때... 장어는 비타민 A가 풍부하고 자양 강장에 뛰어난 식품... 피부미용 및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 좋은 건 다 들어 있네.


따뜻하게 데운 한 팩을 아이에게 권했다. 아이는 내용물의 원재료인 민물에서 사는 두 단어만 듣고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몸에 좋은 거라니 딱 이번만 먹어 보자. 수십 년 전 누군가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일부러 지어 보내신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눈 딱 감고 먹어 보자. 십여 년 전 다른 누군가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나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딸에게 하고 있었다.



딸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데운 약은 아직도 따뜻했다.





... 머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