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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ug 30. 2016

그리운 불편함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할 정도다. 지금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펜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핸드폰을 부여잡을 때가 더 많다. 자판으로 더 빨리 글을 쓰고 쓴 글을 복사하고 붙여 넣어 이리저리 문장을 바꾸고 군더더기는 키 하나로 쉽게 지운다.


이렇게 삶이 편해짐과 동시에 나는 과거의 수고스러움을 조금씩 잊고 있다. 연필로 쓰다 미운 부분을 지우개로 그 틀림을 지워나가던 불편을 잊었다.


꼬일 대로 꼬인 집전화 코드를 풀려고 수화기를 거꾸로 들어 빙빙 돌려가며 그리운 이로부터의 전화를 기다리던 시간을 잊었다.  


교통카드,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 버스비 마련을 위해 큰돈을 깨느라 동네 슈퍼에서 주인아저씨의 핀잔을 들으며 죄송스레 껌 한통 사던 순간을 잊었다.


몽당연필을 다 쓴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 끝까지 쓰고 뿌듯해하던 그 마음을 잊었다.


멀리 전학 간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 시시콜콜한 내 이야기를 편지지에 꾹꾹 담아 아끼던 예쁜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던 그 정성을 잃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불편한 것들이 그때엔 너무도 당연했고 당연함 속에 소소한 행복이 넘쳤다. 지금도 많은 것들이 내겐 당연하지만 시간이 흘러 불편한 순간들로 기억될까.


쓸데없이 불편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그리운 것을 보면 나 팔자가 너무 좋은가 보다 지금. 시간이 지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서글픈 마음으로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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