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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an 26. 2017

우박

우박이 후드득 쏟아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들 중 우박은 제일 덜 반가운 존재일 것이다. 우박이 쏟아지면 경작물이 상할까 농부들의 근심이 는다. 이 땅의 수많은 차주들은 혹여 그들 차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울상이 된다. 우박이야 자주 내리지도 않고 실내 생활에 익숙한 내가 굳이 신과 약속하고 바깥에 서있지 않은 이상 우박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아니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캘리포니아에 우박이 내리다니 놀랄 노자다.


타다닥 타다닥. 우박은 차 위로, 땅 위로 떨어지며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꼭 자신이 왔음을 알아달라는 듯이 말이다. 반가운 손님도 아닌 것이 참 시끄럽기도 하다. 그렇게 불청객은 30분 남짓 내리더니 금세 뽀얀 무지개를 선물하고 갔다. 


밖으로 나가 우박이 내린 자리를 한참 쳐다봤다. 손으로 완두콩만 한 우박을 집어 들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구슬 아이스크림같이 생긴 것이 제법 예쁘고 새초롬하다. 나 좀 들여다봐달라고 그렇게 부산을 떨었나 싶기도 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그 모습을 담았다. 


시 한 편이 생각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살다 보면 껄끄러운 일로 얼굴 붉히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불편한 마음을 앞세우고 만났으니 그 사람이 예뻐 보일 리 없다. 가슴속에 앙금이 져 좋은 구석 찾는 일을 일부러 게을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오래 보다 보면 정이 들고 좋은 면도 보이기 시작할 수 있다. 인생사 희로애락에서 어찌 '희'와 '락'으로만 만날까. '로'와 '애'로 만난 인연들도 다시 들여다볼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어쩌면 저 우박같이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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