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을 찾았다. 한국만큼 미세먼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진흙탕에 구르고 다니지도 않고 차만 타고 다니면서도 때가 되면 꼭 때가 밀고 싶다. 가끔 머리 속이 흐리멍덩하고 가슴이 콱콱 막혀 때라도 밀어야지 싶다.
순서가 꼬였는지 원래 해주시는 세신사 아주머니가 아니라 다른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나는 군말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아주머니의 부름을 받는다. 원래 해주시던 아주머니의 때 미는 순서랑 조금 다른 것 같다. 본래 아주머니 순서에 익숙해져서 이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음 순서의 자세로 바꿀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다시 새로 시작하려니 여간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를 반복적으로 만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익숙해진다. 그리고 늘 하던 방식으로 만나고 교제한다. 상대방이 갑자기 차가워지거나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한다면 우리는 금세 당황한다. 그런 모습은 내게 사전에 입력된 모습이 아니고 이에 대처하는 법을 나는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우리의 관계는 진화해야 한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다시 배우고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외면해버리곤 한다.
새로운 세신사와 긴장된 한 시간이 지났다. 초반에는 원래 하던 아주머니랑 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지만 마지막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로 나는 또 새로운 세신사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보다 더 후하게 팁을 냈다. 예상 밖의 팁이다.
살다 보면 관계가 격동할 때가 있고 비틀릴 때가 있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결같은 것은 없다. 진보하거나 후퇴한다. 새로 출현하거나 소멸한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어렵고 힘들고 귀찮은 건 꼭 무방비상태일 때 예고도 없이 온다. 별 수 있나. 부딪치다 보면 또 다른 관계의 문이 열릴 것이다. 종국에는 또 익숙해진다. 그래서 우리도 만났지 않은가. 모든 만남에 처음과 낯섦이 있듯이 그 상황에 피하지 않고 내게로 걸어 들어온 이들에 고맙다. 나도 우리 관계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지런히 나아가 새로운 너에게 가닿고 싶다.
다음에 가면 또 다른 세신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또 그 앞에서 발가벗고 우리의 신성한 작업을 어떻게든 잘 조율해보겠다고 다짐한다. 혹 더 좋은 세신사를 만나는 행운이 따르면 나는 더 후한 팁으로 우리 관계를 또 살짝 비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