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린이들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제일 꼴찌로 나타났다고 한다. '왜?'라고 되물어야 하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남에서 자란 나도 많이 봐왔던 극성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비교하기, 왕따 현상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인간은 서로를 훼손하고 훼손당하며 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살면서 본의 아니게 남을 훼손하고 그리고 또 본인도 훼손당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하루에 나를 웃게 만들었던 '사람들' 얼굴보다 나를 짜증 나고 화나게 만들었던 '웬수들' 얼굴이 더 많이 떠 오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놈의 '웬수들' 수가 좀 더 많을 수 있겠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선'이라는 딱지를 달고 태어나는지 '악'이라는 딱지를 달고 태어나는지에 대해 논쟁이 많지만 나는 그냥 단순하게 우리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싶다.(하나님이 설마 처음부터 우리를!) 나는 선했던 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되고 닳고 닳아 엄청난 '악'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맷집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친 데를 또 다치고 다치다 보면 딱지도 생기고 굳은 살도 생기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덜 훼손받는 쪽으로 나 자신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아직 그 딱지도 맷집도 없다. 훼손되기엔 너무 어리다. 좀 나중에 훼손당해도 될 것을 그런 것까지 조기교육을 시켜야 되나 싶다.
더욱이 요즘 학교에서 사라졌던 많은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있다. 훼손될 대로 훼손된 어른들의 못된 훼손 버릇이 아이들에게까지 뻗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조금씩 누군가를 훼손하고 살겠지만 그것이 어린이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들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