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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12. 2016

평양냉면

우리가 처음 만날 때에 너는 나를 평양냉면 집에 데리고 갔다. 다른 남자들처럼 무엇을 좋아하냐고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평양냉면이 많이 보편화되고 마니아층이 두터워졌지만 그때에는 평양냉면은 나에게도 많은 사람에게도 생소한 음식이었다. 단골집에 자리한 너는 주문할 때에도 뭐 좀 모르는 그때의 나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내 것까지 주문하고 그 신성한 음식이 나오길 기대했다. 그 단골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내가 첫 데이트 때 자주 가던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마주하던 풍경 속 사람들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그득했다. 너는 처음 보는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정말 평양냉면이 엄청 먹고 싶은 눈치였다.


처음에 그 밍밍한 맛은 나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지만 나는 나중에서야 평양냉면을 참 좋아라 하게 되었다. 너도 그랬다. 처음보다 그 다음이 그 다음 다음이 더 좋았다. 어찌 됐든 우리는 헤어졌고 네가 나에게 남긴 것은 너의 취향, 평양냉면이 된 셈이다. 우리의 첫 데이트에서 먹은 평양냉면은 그렇게 추억으로 남았고 나는 평양냉면 하면 너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항상 트렌드에는 한참 뒤쳐지는 미국에는 평양냉면집이 없다. 평양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먹을 길이 전연 없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꼭 평양냉면부터 찾으리라 마음먹고 있다. 한국에 가서 너를 찾지는 않겠지만 네가 내게 가르쳐 준 평양냉면을 먹으며 그때 마주 앉은 뭐 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가 또 평양냉면 예찬론을 펼치고 앉아있을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그나저나 나는 네게 무엇을 남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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