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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22. 2016

서른 즈음에

막연히 30대에는 엄청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돈도 어느 정도 모으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멋진 애인이 있으며 세단 정도 끌고 다니며 뭔가 폼나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십 대 후반에 결혼하려고 했으니까 애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돈은 있었다 또 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고 직장도 어느 날엔 좋았다 또 어느 날엔 죽을 만큼 다니기 싫다. 멋진 애인은 당연 없고 그냥 내가 제일 멋진 척, 화려한 싱글인 척(?) 살고 있다. 토끼 같은 자식도 없다. 아, 차는 있구나. 그런데 내 차가 아닌 게 문제.


철은 좀 들었나 싶었는데 여전히 개쿨한 척, 고상한 척하지만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는 가끔 찌질이 같고 여전히 수틀리면 화내고 받은 상처는 어떻게 배로 돌려줄까 궁리한다. 말로는 글로는 박애주의자스럽지만 여전히 나는 내 boundary 안 사람들이 제일 편하고 그 사람들 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은데 지랄이 풍년인 날도 좀 된다.


아슬아슬 서른의 문턱에서 이 곳에 넘어와 만 나이로 20대로 살았다. 이제 진짜 만 서른이 되면 내가 꿈꾸던 그런 서른의 나를 마주할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 따나 하루하루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살게 될까. 머물러 있는 것이 청춘도 사랑도 아니라면 그렇게 나도 흐르고 너도 같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는 남겨지고 누구는 떠나가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만 흘러가면 너무 억울하잖아.


"술 먹고 죽자"는 한 친구의 말에 "죽긴 왜 죽어. 오래 살 거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백 살까지 살 건데 뭐."라고 말하더라.


"그럼 70년이나 남았네. 그럼 진탕 마시자."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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