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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22. 2016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매일 기도했다. 손주들이 세계를 누비며 다니게 해 달라고. 할머니의 기도는 통했는지 나와 내 형제들은 다 미국에 살고 나는 특히 적은 나이에 꽤 많은 나라에 가봤다. 막상 그런 할머니가 비행기 타보고 가본 곳은 미국이 전부였다. 그 미국 여행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는지 나한테 '개년'이 얼마나 멋진 줄 아냐고 하는데 나는 나중에야 그것이 '그랜드 캐년'임을 알았다.


나는 사실 할머니에 대해 관심이 없는 손녀였다. 내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데 할머니까지 챙기려면 나는 슈퍼걸쯤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 부모에도 난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할머니는 내게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였다.


그런 할머니와 나는 같이 살게 되었고 할머니는 내 일상에 불쑥 침투했다. 같은 피붙이라도 오래 같이 살지 않았던 할머니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나와 맞지 않았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은 간도 안 맞고 정체불명의 요리가 상에 올라왔다. 국에 돈가스가 떠다닌다거나 온갖 반찬을 때려 넣은 잡탕이 올라왔다. 크리에이티브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설거지도 대충한 듯 항상 그릇에는 이물질이 껴있어 나는 내 식기는 한번 더 물에 헹궈서 썼다. 출출할 때 먹으려고 사다 놓은 햇반은 쉰다며 다 뜯어서 밥솥에 쪄 놓으셨다.


할머니는 비싼 것은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가 있었는데 내가 아끼는 옷가지들이 할머니 서랍에서 종종 나오곤 했다. 할머니는 분명 꼼 데 가르송, 이세이 미야케를 알 리가 없는데 어쩜 비싼 건 죄다 할머니한테 가있었다. 내가 다시 뺏어온 모 가방을 할머니가 벼룩시장에서 사 온 어느 비루한 가방과 맞교환하자고 나를 꼬시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내가 준 돈은 기억 못하고 자기가 나한테 꿔 준 잔돈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처럼 치매는 걸리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메모도 안 해놓고 그렇게 잘 기억할 수가 없다.


할머니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자기주장이 매우 셌다. 자기주장 세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내가 할머니와 따라나섰다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돼지고기를 먹으러 가서는 오리고기 타령을 했고 국숫집에 가서는 냉면 타령을 하셨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 빨리 데려가라고 기도해 놓고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죽자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건강했으면서 그 지겨운 양반을 따라 금세 갔다. 사랑꾼이 따로 없다. 나한테는 나 미국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는데 나처럼 기다리는 건 죽어도 못하나 보다.  


아빠는 가끔 나에게 "넌 참 할머니를 닮았어."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까칠하게 "뭐라는 거야."라고 쏘아붙인다. 그런데 마음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나처럼 온갖 곳을 다니며 매우 창의적이고 똑 부러지고 곤조가 있는 사랑스러운 여자였을텐데...


다음 생애에는 그렇게 태어나길 바란다. 박정희 여사님. 후생에 만나면 샤넬백 하나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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