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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Jul 26. 2016

익숙함에 대하여

또 차 사고가 났다. 다행히 내 과실도 아니고 나는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다만 차가 망가져 토잉 되었고 아직도 수리 중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마련해 준 렌터카를 요즘 타고 다니고 있다.


렌터카는 승차감도 좋고 오히려 원래 내 차보다 좋지만 나는 사실 반갑지 않았다. 나는 익숙한 것이 좋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나에겐 어렵다. 변덕스럽게 생겼지만 나는 한 번 발 붙인 곳에, 한 번 마음을 준 대상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내가 처음 다녔던 교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우리 가족도 다른 교회로 모두 옮겼음에도 나는 그 교회가 멀리 이사 가기 전까지 계속 다녔다. 초딩 주제에 나는 의리의리 했나 보다.


십 년째 입고 있는 옷도 있다. 아마 이 옷과는 영영 이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첫 회사도 1년도 못 다닐 줄 알았는데 3년 반을 다녔다. 물론 경력 관리 차원도 있었지만 연봉 몇 푼 올려 보겠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지긋지긋한 회사였지만 한편으로는 애정 했었나 보다.


사는 곳 또한 쉽게 옮기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았고 그 동네 안에서만 이사했음에도 습관처럼 이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이사 간 집까지 걸어간 적도 많았다. 그 동네 구석구석과 공기까지 아직 생생한 것을 보면 나는 연어처럼 그 동네로 언젠가 돌아갈 것만 같다.


귀책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한 번 만나면 오래 만났다. 여자 마음은 갈대라지만 난 갈대보다는 뿌리에 가까웠다.  71억 명 중 하나인 너와 내가 만난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확률의 우연이던가 운명이던가. 남자와 여자 사이는 한 번 돌아서면 끝이니까 나는 너를 사랑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익숙한 너와 영영 남이 된다는 것이 더 괴로웠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떠나가는 사람보다 남겨지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익숙함은 무섭다. 머리로 기억한다기보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영역보다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 빼고 나에게 익숙한 것들은 모두 배신하지 않는 아니 배신할 수 없는 사물들 뿐이다. 잘 알면서도 나는 또 누군가에게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어쩌면 그 배신에도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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