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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m Lee Aug 04. 2016

깍지를 끼니 오래전 네가 생각난다

오늘은 샤워 후 맥주도 한 잔 했겠다 기분이 좋다. 적당한 피곤함과 근사한 조명과 글을 쓰는 성실한 느낌이 어우러져 콧노래라도 부를 판이다. 가만히 고개 뒤로 깍지를 끼고 생각한다. 지나간 것들을.


깍지를 끼니 오래전 네가 생각난다. 깍지를 끼면 금방 헤어진다는 말에 손잡을 때 나는 절대 깍지를 끼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미신을 네게 들려주니 너도 그다음부터 깍지를 끼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그것은 내게 습관처럼 남아 난 무의식적으로 누구와 고도 깍지를 끼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소바를 먹으며 또 문득 네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메밀 알레르기가 있었던 너. 나는 그래서 너와 만날 때에 좋아하는 소바, 냉면을 자주 먹지 못했다. 지금은 물릴 때까지 먹을 수 있지만 너와 나는 아직도 비밀조약을 맺은 것처럼 그것을 많이 먹으면 죄짓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내게 축하할 일이 있어 사온 케이크가 초코케이크라 서러웠다. 나는 초코케이크는 먹지 않는다. 초콜릿 싫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겠지만 나는 초콜릿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친구들은 나의 애인들은 이런 것쯤은 다 알고 있었는데... 다시 말하는 것이 귀찮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되던 사람들이 그리울 뿐이다.


너는 왼손잡이인 나를 배려해 내 자리는 늘 끝자리로 남겨줬었다. 왼손잡이를 특별 대우해주던 나의 오른손잡이 친구들은 다 어딘가 오른쪽 한편에서 잘 살고 있겠지?


책에서 보니 "옛날은 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라고 하더라. 나도 옛날은 지나가는 줄만 알았는데 정말 이렇게 자꾸 온다. 슬픈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억력 안 좋은 내가 옛 것들을 이렇게 상기할 때 나는 내가 기특하다. 근사한 추억 하나 없었던 청춘이라면 정말 억울할 텐데 내 청춘은 너무 반짝반짝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반짝반짝했던 청춘에 있었던 내 사람들에 새삼 고맙다. 그때 우리가 만나 반짝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젊어서가 아니라 근사한 너와 내가 만나 서로에게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참 좋았는데...


이렇게 나의 호시절은 자꾸 내 마음에 와 나를 때린다. 흠씬 두들겨 맞아도 어색하지 않고 좋은 것을 보니 나는 원래 알고 있었나 보다. 옛날은 영영 가는 게 아니라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오늘도 이렇게 간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다시 올 것 같은 오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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