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키우던 반려견 달이를 올해 6월에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남아 있는 가족들은 처음에는 망연자실, 그리고 자신을 탓하고 미안해하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보기 단계를 거쳐 이제는 달이의 부재에 대해 인정하고 그리워하며 서로의 상처를 할퀴기보다 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끼리 짧은 견생 또는 인생을 잘 지내보자 하는 쪽으로 치유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달이가 혼자 심심할까 봐 달이의 친구 삼아 입양하게 된 복돌이가 2013년에 4살 때 와서 지금은 11살이 되었나 봐요. 우리 집에 달이는 떠났지만 복돌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요즘은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젖 떼자마자 우리 집에 왔던 달이와 달리 4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우리 집에 오게 된 복돌이는 참 사랑스러운 말티즈 믹스견입니다. 지인이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분양을 받았던 강아지였는데 한참 공부하며 다른 것에 신경을 쓰던 아이들은 복돌이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 혼자 집에 방치되었었다고 해요. 심지어는 추운 날씨에 집 밖에서 재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복돌이의 전 주인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행히도 복돌이의 전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우리 집을 떠올리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었죠.
또 더욱 다행이었던 건 복돌이의 건강상태도 양호했다는 거예요. 복돌이가 집에 오고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을 때도 다른 이상이 없었고, 이듬해에 동물등록이 의무화되면서 우리 집의 그것도 나의 반려견으로 달이와 함께 등록되어 지금까지 우리 가족으로 살고 있으니 복돌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겠죠.
단지, 가끔 복돌이의 소심함, 사회성 부족 등을 볼 때 이 아이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도 달이와는 성별이 다르다 보니 성격도 다르겠지 하고 달이의 좋은 동생(달이와 5살 차이가 나는)으로 사이좋게 잘 지내왔습니다. 서열도 잘 지켜주었어요.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와서 간식을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권리도 달이에게 있었으며 부부 침실에서 함께 자는 위치도 달이가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을 달이와 함께 어느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 복돌이는 달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달이가 숨을 거둔 것이 병원이었기 때문에 복돌이는 병원 가는 모습만을 보았으니까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생각해 보면 최근 몇 달 동안 혼자 푹 쳐져 있고, 얌전하다 못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풀이 죽어지낸 것도 모두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어요.
아빠가 밖에서 들어올 때 현관문 앞으로 다가오는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만 있는다거나 사료도 잘 먹지 않고 침울해하는 그 모습이 정말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달이를 잃은 슬픔에 나 자신을 추스리기도 버거워서 그런 복돌이의 모습과 행동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남아있는 가족끼리 행복하게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고 나서는 복돌이와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날씨가 좋으나 나쁘나 같이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어요.
복돌이는 대부분의 반려견들이 그렇듯 산책을 나가면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또 간식을 먹을 때 기분이 좋아졌어요. 차츰차츰 복돌이는 현관 앞에서 사람을 마중 나오고 식사 때 간식을 달라고 주방까지 오기도 하는 등 우울증이 조금씩 극복되는 것 같더라고요.
미용실에 데려가서 미용도 예쁘게 시켜주고, 조금 먼 곳에도 함께 가면서 새로운 것도 보여주고, 항상 옆에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애를 썼어요. (이런 때는 내가 집콕 주부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복돌이가 어느 날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몸에 열이 나는 것 같고 귀도 못 만지게 하길래 병원을 데려갔어요.
노견들이 있다 보니 주치 병원으로 해야 할 곳으로 정해놓은 병원이었는데 달이는 주말에 이 병원에 와보지도 못하고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에 응급으로 입원했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었죠.
복돌이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건강해서 병원에 올 일도 없었지만 우리 가족이 점찍어 놓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서요. 병원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이 병원에 10년 동안 쭉 다니고 있다는 어떤 반려견 주가 올려놓은 글을 읽고 나서 신뢰가 갔기 때문이었어요.
역시 그 견주분의 리뷰대로 xx 동물병원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하는 동물 병원이었는데 수의사 선생님과 아내 선생님 두 분 다 진심으로 반려견을 사랑해주시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복돌이는 외이염이라고 진단을 받았는데 항생제 주사 놓아주시고 먹는 약 처방과 바르는 약을 주시면서 어떻게 발라주어야 하는지도 자세히 알려주셨어요.
복돌이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복돌이의 치아상태를 보시고 나서 선생님은 복돌이의 나이가 11살이 맞냐고 다시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복돌이가 4살 때 우리 집에 오게 된 거고 이렇게 8년째 가족으로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복돌이가 복이 많다고 좋은 주인 만났다고 아플 때 빨리 데려와서 잘했다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아, 정말 제가 그렇게 좋은 주인이었다면 달 이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겠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선생님은 달이를 모르고 또 이미 달이의 죽음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니 "네, 그런가요?" 하고 힘없이 대답만 했어요.
저야말로 속으로 정말 복돌이가 의사 선생님 잘 만난 것 같다. 다행이다 하고 감사해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복돌이 나이가 그럼 몇 살로 보이는데요?"라고 다시 여쭤보았어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더 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음, 실제 나이를 궁금해하지 말고... 얼마나 더 살 수 있나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아픈데 있으면 고쳐가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면 돼요. 사람도 다 마찬가지죠. 나이대로 순서대로 가는 것 아니고 건강하던 사람이 젊어서 죽기도 하고,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오래 살기도 하고, 사람 수명이나 강아지 수명이나 다 그런 거니까... 의사도 언제까지 살 수 있다 이런 거 말 못 하니까, 그냥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잘 지내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였어요.
어쩌면 제가 복돌이의 나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다면 그럼 얼마나 더 같이 살 수 있나 잠시 스치듯이 생각한 속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듯한 말씀이었고, 어쩌면 누구나 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을 통해 들으니 더 신뢰가 가고 진실한 이야기 같이 들리더라고요.
그래, 그렇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지. 달이에 대한 죄책감도 미안함도 그 순간에 마치 용서받는 듯한 느낌이었고요.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 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살아 있는 동안 함께 하는 이들(복돌이 포함)에게 최선을 다하자. 후회를 남기지 말고 맘껏 함께 행복해지자...
복돌이의 외이염은 약 먹고 바르고 곧 나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사회성 없는 복돌이 난생처음 반려견 놀이터에 데려가기 위해 광견병 예방접종도 이 병원에서 했어요. 앞으로 복돌이와 더욱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노견이다 보니 병원에 올 일이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 앞으로 이 훌륭한 선생님과 복돌이가 종종 만나게 되겠죠... 이 선생님은 자신의 말이 저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는 걸 모르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