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 인정하기
불안증 (=불안장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의사선생님은 이 단어를 쓰지 않으신다) 신체증상은 오락가락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내달리고 지진 난 듯한 몸속의 떨림이 주된 증상이었는데, 처음 몇 개월은 약을 복용해도 계속 이어졌다. 주로 아침에 일어날 때 가장 심했다. 잠에서 깨는 그 즉시 몸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댔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점차 그 떨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갔다. 의사선생님이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 곧 지나갈 거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라고 말해주신 것이 도움 됐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조언을 들은 그날부터 바로 셀프세뇌 작업에 들어갔다. 떨릴 때마다 괜찮다, 곧 사그라든다고 되뇌며 나를 다독였다. 6-7개월 후부터는 강도와 빈도가 조금씩 낮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쉽게 찾아오는 매우 거슬리는 놈들 중 하나이다.
공황장애 증상도 아주 가끔 발생했는데, 나의 경우엔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나는 소리에 상당히 민감하고 (교향곡을 들어도 오케스트라 어디선가 음 이탈이 나면 귀에 내리 꽂히고, 블루투스 기기를 연결할 때 발생하는 고주파 소리도 내내 들린다), 사람이 심하게 많은 곳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어쩌다가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약간의 공황증세가 나타나곤 했다. 심박수가 치솟고 눈앞이 하얘지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정도였다 (심하면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더라). 그럴 때는 가능하면 재빨리 조용한 곳으로 이동을 했고, 이동할 수 없을 경우 바로 약을 꺼내 먹고 심호흡을 하며 귀를 막아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내게 안전한 도피처였다. 한 음 한 음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그런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약간) 잊게 되고, 어느새 호흡이 진정되어 있었다. 연습이 조금 필요하긴 했다.
흔히들 우울증을 감기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인이 우울증을 비염에 비유해서 또 쌍따봉을 날렸다. 감기는 어디서 옮은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콜록대다가 때 되면 낫지 않는가. 비염은 그냥 그런 체질로 태어나서 올해도, 내년에도 환절기만 되면 코 안에 염증이 가득 찬다. 일시적이지 않고, 업 앤 다운을 반복하며, 쉬이 낫지 않는 병이라는 측면에서 우울증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우울증, 불안증이 뭔지 잘 모르겠다. 왜 생겼는지, 왜 자꾸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살만해서 걸리는 거라고 했다. 자신은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긴박해서 우울증에 걸릴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만만치 않게 팍팍하게 산 것 같은데 말이지). 쉽게 걸리는 사람이 있고, 절대 안 걸리는 사람이 있는 걸까? 나도 언젠간 약 복용을 완전히 멈출 수 있게 될까? 오메가3도 안 먹는 내가 정신과 약은 매일 챙겨 먹느라 아주 귀찮아 죽겠다.